나쁜 여름 - 개정판
소메이 다메히토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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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인간 파멸의 끝을 보여주었다.
내리쬐는 햇빛, 좁은 집 안에 널브러진 여성, 남성, 아이.
핏빛으로 얼룩진 그 광경은 머릿속에 멈춰 섰고, 검은 화면과 함께 영화는 끝났다.

일본은 사회복지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다.
하지만 제도가 이상적으로 운영되는 현실이 과연 있을까?

소설에는 엉터리 수급자들이 등장한다.
아들이 있음에도 없는 척 돈을 받는 노인, 거짓 서류로 수급을 받아내는 남자.
이런 이들에게 세금이 쓰인다고 생각하면, 제도에 대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반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있다.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끝내 목숨을 끊는 여자처럼.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들에게 돈만 주는 것으로 충분할까?
심리 상담, 구직 지원 같은 적극적인 도움은 필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마음 아프다.
법적 보호 안에 있지만, 실상은 방치되어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미소라'는 그런 현실을 대변한다.

가장 슬펐던 건, 친절하고 꼿꼿했던 마모루의 타락이었다.
착하고 순수했던 그가, 강요와 배신 속에 약에 의존하게 된다.
그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쉽게 얻으려는 자들이 문제인가,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인가.

책장은 닫혔지만, 영화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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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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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고 있던 베토벤에 대한 상식—청력을 잃고 괴팍한 성격으로 살아갔다는 일화—을 넘어, 베토벤의 스승, 가족사, 그의 피아노, 악보 판매와 공연 등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베토벤이 지휘한 공연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그의 집이 어지럽고 불편했던 모습들은 그가 위대한 음악가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음을 보여줬다.

책은 100개의 짧은 장면으로 베토벤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베토벤이 철학자 괴테와 산책을 했다는 사실이나, 쇼팽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슈베르트는 무한히 존경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더불어 당시 베토벤의 주변 인물들—유명한 음악가들—이 등장하면서 책은 그 자체로 음악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다.

베토벤이 참여한 즉흥 피아노 배틀에서의 이야기는 특히 나를 감동시켰다. 악보를 뒤집어 한 손으로 연주하며 즉흥적으로 풀어낸 그 장면은, 음악적인 천재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곡의 구성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감정과 해석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지닌다는 점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연주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주며,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으로서 더 깊은 이해와 표현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의 이야기는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곡은 베토벤이 다시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게 만든 곡이었지만, 결국 한 아이의 연주로 그 곡의 진가가 발휘되고, 전 세계에서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도 <엘리제를 위하여>, <장엄미사>, <월광 소나타>, <비창 소나타> 등 유명한 곡들에 얽힌 이야기도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그저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의 삶과 음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된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베토벤의 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가 살아온 방식과 그가 남긴 예술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이 책은 베토벤이라는 거장을 알고 싶고, 그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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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여자들 - 우리의 잃어버린 감정, 욕망, 행동에 관하여
엘리스 로넌 지음, 정혜윤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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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억압과 감정의 부정을 종교·문화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저자 엘리스 로넌은 일곱 가지 죄악이 여성의 본능을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음을 밝히며, 특히 ‘시기’라는 감정을 억압당해온 현실을 지적한다.
감정은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며, 진정한 소통의 힘이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작고 얌전한 여성'의 이미지는 여성의 욕망까지 억누르고 있음을 꼬집는다. 이 책은 여성의 감정과 욕망, 그 안의 힘을 회복하려는 여정이며, 여성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를 살고있는 여성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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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방랑길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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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곳곳을 떠도는 효원과 요괴 사로의 여정은 마치 오래된 설화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상을 알고 싶은 소년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요괴가 함께 마주하는 사건들은 단순한 괴이함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조명한다. 금도깨비의 실종을 시작으로 날개 달린 아이, 목각 인형, 도깨비불까지, 그 기묘한 이야기들 속엔 오해와 그리움, 두려움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 중 <차오르는 술잔> 편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손톱을 먹고 따라하는 쥐’라는 소재가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고, "세상에 공짜 술은 없다"는 말은 뼈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로는 효원과의 여정을 통해, 자신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낀다. 그 마음이 이 이야기를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든다. 『기기묘묘 방랑길』은 이상하고도 다정한 이야기다. 상처와 위로, 우정이 차분하게 스며드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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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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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역사 속에서 배제된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조명하는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은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 학문이라는 통념을 깨뜨린다. 물리학이 종교처럼 권위를 구축해온 과정과 그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소외되었는지를 고발하며, 과학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과학은 단지 이론과 실험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갈등 속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서사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권위적 장르에 균열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오랫동안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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