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성장 소설이자 역사 소설이며, 엄마와 딸의 갈등을 담아낸 문학이고 동시에 작가의 자전적 기록이다.
기억의 시작은 박적골이다. 대대로 살아온 고향집과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이 잔잔히 펼쳐진다. 자연은 아이에게 가장 큰 놀이터였고, 묘사는 생생해 독자에게도 마치 함께 그 시절을 살아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아이에게 일제 강점기의 옳고 그름은 실감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일본어가 당연했고, 한글은 편지를 쓰기 위해 억지로 배워야 했던 언어였다. 이처럼 개인의 시선에서 서술된 시대상은 ‘가만히 있던 사람들’을 쉽게 탓할 수 없게 만든다.
서울로 옮긴 뒤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오빠와 자신에게 다른 기대와 태도를 보이는 엄마, 할머니·할아버지의 사랑에 비하면 부족한 애정, 친구도 거의 없는 외로운 환경 속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엄마의 모순된 태도를 비난하지도, 완전히 포용하지도 않는 태도는 딸과 엄마의 관계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일제가 패망하고도 혼란은 이어졌다. 피난과 이주의 연속 속에서도 서술은 국가적 사건보다 ‘나’의 학교생활, 가족과 친척들의 삶에 초점을 둔다. 참혹한 시대를 담담히 그려낸 문체 속에서 은근히 스며 나오는 분노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정갈하고 유려한 글이었다. 어린 시절의 향수, 분단의 아픔, 개인의 상처와 성장을 모두 담아내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다음 책을 집어들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