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우발성과 임의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 있다.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박상미 옮김, 마음산책)이다. 뜻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이 연속되면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그런대로의 삶이 일구어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거기에는 인도 출신 미국 이민자 가정의 2대에 걸친 삶이 그려져 있다. 고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상실과 단절을 이겨내며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부모 세대 아시마와 아쇼크의 이야기에서부터 그들의 아들 고골리가 부모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 문화적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며 한 사람으로 자리하기까지의 긴 시간이 담겨 있다. 그 삶은 인도라는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미국이라는 사회 문화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특별한 가정의 이야기인데도 누구나의 삶과 묘하게 닮아 있어 삶의 보편적 의미를 떠올려 보게 한다.



“여러 면에서 그의 가족의 삶은 예상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았던 하나의 사고가 다음 사고를 낳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아버지의 기차 사고였다. 이 사건은 처음엔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나중에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였고, 세상 저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은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담긴 편지가 캘커타와 케임브리지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고였다. 이로 인해 얼떨결에 고골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수년 동안 고골리라는 한 인간의 윤곽을 형성함과 동시에 괴롭혀왔었다. 그는 이런 임의성을, 이런 빗나감을 바로잡으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을 완벽하게 새로 창조하는 것은, 그 엉뚱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책의 첫장에 실린 위의 글처럼 여러 사건 사고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중 고골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부유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는 부모가 준 이름을 부정하고 새 이름을 만들지만 이름으로 자신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이 한 인간을 온전히 대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고골리의 아버지 아쇼크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자랐다. 스물두 살 무렵 기차 여행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고 손에 들려 있던 책덕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그때 그를 구해준 책이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이다. 그는 이 사고를 계기로 인도를 떠나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부모의 주선으로 아쇼크는 아시마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의 이름이 적힌 외할머니의 편지가 분실되는 바람에 한동안 이름을 짓지 못하다 우연히 ‘고골리’라는 애칭을 붙여주게 된다. 고골리는 아쇼크가 좋아하는 러시아 작가이자, 기적처럼 그의 목숨을 구해준 책의 저자였다. 태어난 아이는 아쇼크에게 하나의 기적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다. 아이에게 붙여지면서 ‘고골리’라는 이름 또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차 사고가 아닌 아이의 탄생으로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삶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애칭으로 주어진 ‘고골리’라는 이름은 외할머니의 편지가 영영 도착하지 않고 아시마의 아버지가 급작스레 돌아가시는 등의 사건을 통해 아이의 공식적인 이름이 된다. 고골리는 성장하면서 러시아 작가의 그림자를 품고 있는 자신의 이름이 싫어졌다. 부모님이 고수하는 인도식 삶의 방식이나 전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듯, 그 이름이 자신에게 걸맞지 않다고 여겼다. 그가 열네 살 되던 생일날 아쇼크는 고골리에게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을 선물하며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 속에서 나왔다’라는 말을 전하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을 고골리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인도 출신 부모가 고수하는 관습처럼 그에게 주어진 ‘고골리’라는 이름이 불만이었던 그는 열여덟 살에 이름을 ‘니킬’로 바꾸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부모를 떠나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고골리로 알았던 사람들에게서 분리되어 ‘니킬’이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부모가 원했던 공학이 아닌 건축을 전공하고 맥신이라는 미국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하면서 부모로부터 그에게 전해졌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우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 하지만 아버지 아쇼크의 급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고골리라고 불리었던 부모의 집, 소원했던 가족 문화의 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고골리는 인도 출신 부모 아래 자란 모슈미와 결혼하지만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 없이 이끌리듯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이 생기면서 이혼을 맞는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혼이라는 우연하고 결정적인 사건을 겪으며 고골리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펼쳐보지 않았던 고골리의 책, 아버지가 선물해주었던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을 뒤늦게 다시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고골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고골리’라는 이름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니콜라이 고골리의 ‘외투’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외적 요인-태생과 문화와 관습에서부터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의식주까지-이 한 개인을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모로부터 주어진 이름과 부모 세대에게서 받은 영향이 뒤섞여 개인의 일부를 이룰 테지만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이 덧대어지면서 개인의 정체성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영향이 큰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 사람은 만들어진다. 고골리가 니킬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그가 완전히 고골리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니킬이면서 고골리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개인의 정체성에는 의지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결말에 이르러 소설은 부여된 것과 선택한 것이 뒤섞여 한 사람이 형성됨을 보여준다. 니킬로 이름을 바꾸고, 부모가 고수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탐색했던 그는 새로운 환경과 다양한 관계와 연결되면서 부모 세대와는 다른 형태로 삶을 변형시켰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지우고자 했던 '고골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특성은 결코 놓아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임을 발견한다.



급작스레 아버지를 잃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후에야 고골리는 먼 고향 땅에서 부고가 전해 올 때마다 죽음을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에 커다란 슬픔을 드러냈던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죽음과 이혼을 통과하면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족, 부모의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다. 그곳은 '고골리'로 불리는 태생적인 그를 알기에 부연설명 없이 그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놓인 자리이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의 웅덩이를 가족과 함께 하는 매일 저녁의 채식 식사로 매꾸며 그는 가족 문화와 관습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일부를 이루었음을 깨닫는다. '고골리'라는 이름을 통해 애정을 주고 받은 사람들, 가족안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기억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고골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그렇게 발견한다.



고골리에서 니킬로 이름을 바꾸고도 하나의 이름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남자를 보여주며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 사람을 이루는 정체성은 고정된 이름 하나로 지칭할 수 없음을, 시기와 조건, 환경과 관계에 따라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부유하는 게 삶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삶의 혼돈과 어려움은 아시마나 아쇼크, 고골리나 모슈미의 특별한 인생에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 정체성을 만들고 삶을 꾸려가는 이라면 모두가 엇비슷하게 경험하는 흐름일 것이다.




***




“여러 면에서 그의 가족의 삶은 예상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았던 하나의 사로가 다음 사고를 낳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아버지의 기차 사고였다. 이 사건은 처음엔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나중에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였고, 세상 저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은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담긴 편지가 캘커타와 케임브리지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고였다. 이로 인해 얼떨결에 고골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수년 동안 고골리라는 한 인간의 윤곽을 형성함과 동시에 괴롭혀왔었다. 그는 이런 임의성을, 이런 빗나감을 바로잡으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을 완벽하게 새로 창조하는 것은, 그 엉뚱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결혼 또한 실수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가족의 곁을 떠나신 것은 사고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사고였다. 아버지는 마치 오래전에 그러니까 사고가 나던 그날 밤 죽음의 연습이라도 하신 것처럼, 그날 이후 남은 일은 그저 어느 날 조용히 가는 것이라는 듯이 돌아가셨다. 그러나 고골리를 형성한 것은, 결정적으로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이것들은 사전에 준비가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되돌아보려면, 돌아보며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들인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제자리를 벗어난 곳에서 잘못 일어난 일들이지만, 결국 끝까지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삶을 견뎌낸 것들이었다.”

369~370쪽



모든 이의 삶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건도 이런 일련의 임의적이고 빗나간 사건들일 것이다. 사전에 준비가 불가능하면서 돌아보며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들. 어쩌면 죽음이 우리를 가로막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 그중에는 일어나서는 안 될, 제자리를 벗어난 곳에서 잘못 일어난 일들도 있을 테지만, 그것을 헤아리고 보듬으려는 노력이 결국 끝까지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삶을 견뎌내게 하는 무엇이기도 하다는 걸, 소설을 읽으며 어렴풋이 이해한다.



고골리는 아주 늦게서야, 아버지가 선물한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모음집>을 다시 펼쳐 들게 된다. 그가 아주 늦게서야 아버지의 본모습과 부모 세대가 경험한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과 삶의 불안정성을 조금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삶에서 진실이나 진심이라는 것은 이렇게 늘, 뒤늦게 우리에게 당도한다. 그러므로 제때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우리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생각하게 된다. 나라는 개인을 이루는 바탕에 존재하는 무수한 연결과 우연성을 떠올리면 삶 앞에, 그리고 죽음 앞에 겸손하게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외투’를 걸치고 살아간다. 그것은 얼핏 삶의 겉면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벗어버릴 수 없으며 그러는 사이 내면 깊숙한 곳에 연결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 외투로 우리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간신히 감싸며 모진 삶의 사건들을 헤쳐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