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변화, 또는 진보가 이끌어낼 미래는 더 이상 나에게 해당하는 시간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신기술로 급변한 미래가 아닌 과거나 현재의 긍정적인 가치가 유지되는 미래이고 어떤 면에서는 변화가 더딘 과거의 모습을 지향한다. 한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시간의 축, 그 위에서 가능한 빨리 도달해야하는 점으로서의 미래, 불가능을 가능의 세계로 끌어 놓는 진보와 개발, 혁신의 미래는 단순히 매혹의 대상만은 아니다. 진보라고 부르짖었던 미래가 당도했을 때 더 큰 좌절을 겪었던 경험은 미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미래는 여전히 꿈꿀 만한 것일까. 미래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지돈의 단편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중)는 정치적 격변과 경제개발의 물결에 휩쓸렸던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오사카 만국박람회(엑스포70)를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미래의 의미를 묻는다. 소설은 시대 변화에 주축이 되었던 남성이 아닌 그 안에 속해 있었지만 소외되었던 여성, 태순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건축가인 조영무(1932년~)와 김원(1943년~), 그의 스승인 김수근(1931년~1986년)등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은 역사적 사료 같은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정태순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주류의 시선을 소수의 것으로 확장시킨 것이 이 소설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작가는 이 작품이 실린 소설집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에서 소외된 인물을 통해 역사적 경험을 재해석하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에 등장하는 ‘재닛 프리드’ 역시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엑스포 70 한국관 안내원으로 선발된 정태순이 작품의 화자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다. 엑스포 70 자료에서 한국관 멤버들의 단체 사진을 보았는데 이후 한국의 대표 건축가가 된 남자들 사이에 홀로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녀가 누군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개발도상국의 예술가와 건축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에는 늘 동조와 비판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미래에 대한 매혹과 그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할 순 없을까. 작가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되었고 이야기는 정태순의 목소리를 빌어 흘러나오게 된다. 정태순은 당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상정하는데 활발하게 활동했던 단체에 속해있었지만 동조와 비판의 시스템에서조차 소외된 관찰자이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소수자였다.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본다면 어떨까. 모두가 예정된 길을 가는 듯 했지만 그 길 밖에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참고 https://m.blog.naver.com/jump_arko/221497194850
식민 지배와 이념 갈등의 여파로 반 토막 난 동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나 10대에 혁명과 독재를 경험하고 대학에 입학한 여성, 정태순에게 서울은 어떤 곳이었을까. 1968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해 서울에 올라온 대구 출생의 태순은 서울에서는 ‘수업을 듣고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풍경만 보고 살았다’. 명동과 종로를 걸어다니며 새로 지어진 빌딩과 아케이드를 걸어다녔고 사람들의 차림을 구경하고 고가도로가 올라가며 하루 하루 눈에 띄게 변해가는 서울의 풍경을 관찰했다. 그런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들뜨거나 풀이 죽는’ 기분을 느끼거나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불쑥 솟아오르게 했다. 시각적으로는 모든 게 변하고 있었던 시대, 하지만 정말 변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격변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