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정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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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전통적 소설 쓰기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급진적인 글쓰기 실험을 감행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출항>, <밤과 낮>에 이어 울프가 세번째로 내놓은 작품이다. 제이콥이란 인물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를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반향을 만드는 작품이다. 제이콥의 성장 과정을 따라 무수한 인물을 주변에 배치하여 삶과 순간, 존재와 관계, 기억과 욕망을 들춰보려는 울프의 시도를 어렵사리 더듬어볼 뿐이다. 주인공으로 제시된 인물 제이콥은 소설 속에서 단 한번도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인공을 따라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데 익숙한 일반 독자에게 이 소설은 난해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제이콥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케임브리지에서 보내는 대학 시절, 그리고 런던에서의 삶과 그리스로의 여행 등 이십대로 접어든 그의 행로를 따라 전개된다. 그와 직접적으로 마주치거나 그의 주변인과 연결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제이콥의 존재는 중심에 내세워 졌다가도 금세 배경으로 물러난다. 제이콥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하기 보다 주로 다른 인물에 의해 말해진다.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제이콥’이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단호했다, 그러면서도 젊음이 넘치고, 무심하고,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무례하고 경험이 없었지만,” “감수성있고”, 무엇보다 “내실이 있는 젊은이”라는 식으로. ‘아주 서툴고’, ‘그러나 아주 기품 있는 모습’이라거나 “당신은 우리가 본 사람 중 가장 멋진 사람이에요,”라고 노골적으로 찬탄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과 같은 말은 표상적인 수준에서만 맴돈다.




제이콥이라는 인물은 애초에 명확한 캐릭터로 제시된다기보단 소설 전반에 걸쳐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는 소설이 제이콥의 성장 과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날을 떠올려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자기도취에 빠지고 무한한 가능성에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상태이기도 했다. 20대 초반을 지나는 제이콥의 모습이 그렇게 다가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러쿵 저러쿵 그의 일면들이 제시되지만 모두 단편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지닌 젊음은 빛을 발하고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끌어내지만 ‘기품있는 젊은 영국 신사’ 이상의 이미지는 없다. 진정한 자아는 채워 져야하는 무엇으로 남아있다는 듯. 젊음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시간을 따라 찾고 쌓아가야 할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듯, 소설은 마지막까지 그의 완전한 캐릭터를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통해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에 대해 작가가 어떤 실험이나 탐색을 하고 있는 걸까? 존재의 의미란 지속되는 순간 속에서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며 제이콥은 그 시간을 충분히 살지 못했다는 의미일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제이콥이라는 인물에 대해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빠져드는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녀들이 사랑한 제이콥의 실체 또한 겉모습에 치중한 것이다. 진짜 제이콥은 어디 있는가.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해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진짜 제이콥은 없다. 사람들을 통해 접하는 것은 그의 편린들이다. 그것 만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진실한 내면에 다가갈 수 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없이 남겨진 방처럼, 소설에 그려진 제이콥이라는 인물은 영혼 없이 이름으로만 텅 빈 채 존재한다.




“내 등장인물들 뒤에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동굴을 파고 있는가에 대해. 그것들은 정확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인간성, 유머, 깊이. 내 아이디어는 이 동굴을 연결해서 그것들 하나하나가 현재의 순간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p.109)

“아직도 분명치 않은 것은 댈러웨이 부인의 성격이다. 너무 경직돼 있고, 너무 번쩍거리고, 너무 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을 지탱하기 위해 무수한 사람들을 등장시킬 수 있다. (…) 내가 터널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1년간의 모색이 필요했다. “ (p.111)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박희진 옮김, 솔 출판사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인물의 성격을 구축하기 위해 등장 인물 뒤에 동굴 또는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실제 <댈러웨이 부인>에서는 주인공 내부로 여러 갈래의 깊은 길을 파기도 하고, 주변 인물들의 내면과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주인공을 향하는 터널을 내기도 했다. 그 터널이 연결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부각되고 인물의 관계가 명확해 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제이콥의 방>에 대해 이후 소설 쓰기에 대한 실험의 장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터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기에 앞서 그 작업의 가능성을 <제이콥의 방>에서 타진해 보았던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실험에서는 인물을 향한 무수한 터널만 존재할 뿐 그 길을 하나로 연결하여 별이든, 동그라미든, 또렷한 형태로 드러내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대 초반에 사망한 오빠 토비를 모델로 했다 하더라도 제이콥이라는 인물은 마지막까지 유령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하나의 인물로 생생하게 독자 앞에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반에 그림자처럼, 혹은 유령처럼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다.




해설에서 옮긴이 김정은 제이콥이라는 인물을 거둬내고 그 주변에 그려진 여성들을 통해 소설을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제이콥’과 ‘제이콥의 방’을 통해 자신의 기억과 욕망을 바라보며 ‘존재의 순간’에 닿고자 했던 여성을 통해 울프의 목소리를 체험하는 데 소설 읽기의 비밀 열쇠가 있다고 말한다. 김정은 “제이콥의 방에 제이콥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며 또 그 방의 주인은 제이콥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울프가 이전의 소설 형식을 뒤집으며 “‘삶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며 기억은 꼭 유용한 행동을 이끌어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방향이 정해진 의미 있는 시간은 시간보다는 공간에 속한다’는 실험을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요 여성 인물을 분류하고 제이콥을 통해 바라보았던 그들 자신 내면의 욕망을 더듬어 본다. 김정의 시선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도 소설 읽기가 가능하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대표적 서사에 몰두한 읽기가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러한 독서법은 왠만한 내공 없이 단번에 시도할 수 없는 방식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경우, 해설을 먼저 읽고 소설을 읽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삶이란 무도한 거야-삶이란 가증스러워,” 로즈 쇼가 소리 질렀었지. 삶이 낯설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삶이 어떠한지 그 본질이 분명히 드러난 것 같은데도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런던의 거리에는 지도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에는 지도가 없다. 만일 당신이 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을 맞닥뜨릴까?” (p.135)

<제이콥의 방> 버지니아 울프, 김정 옮김, 솔 출판사




제이콥 주변을 둘러싼 주요 여성 인물의 기억과 욕망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소설을 이해하려 애쓰지 못했더라도 울프가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메시지들은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울프는 <제이콥의 방>에서도 인물이 바라보는 풍경과 시선이 닿는 지점의 사유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순간’과 ‘찰나’ 속에서 의미를 길어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도 순간이 갖는 의미를 탐색하고, 찰나가 지닌 한계 속에서도 그 속에서만 빛나는 삶의 의미가 있음을 드러낸다. 삶과 타인, 세계의 질서와 원리 등 그 진실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무엇일지라도, ‘순간’과 ‘찰나’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길어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 ‘죽음’에 도달하지만 존재하는 순간에만 영롱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수백만의 책장을 뒤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이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와 다른 성에 대해 근원적이고 공평무사한, 그리고 절대적으로 공정한 의견이란 결코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남자이건 아니면 여자이건. 우리가 냉정한 사람이건, 아니면 감상적인 사람이건. 우리가 젊은이건 늙어가고 있건. 어떤 경우에라도 삶이란 그림자의 행렬일 뿐인데, 그런데 왜 이다지도 우리는 그 그림자를 열렬히 껴안는지, 그리고 그들이 떨어져 나가 그림자가 되는 것을 그렇게 고통에 차서 바라보는지. 그리고 왜, 만일 이것이, 이것보다 더한 것이 진실이라면, 왜 우리는 아직도 창문 모퉁이에 서서 이 갑작스러운 영상, 즉 의자에 앉아 있는 그 젊은이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실재적이고 가장 견고하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에 이다지도 놀라는 것인가?-왜 진정으로? 왜냐하면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거면서도.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방식이다. 또한 우리의 사랑의 조건이기도 하고.”(p.100-101)

<제이콥의 방> 버지니아 울프, 김정 옮김, 솔 출판사




버지니아 울프는 <제이콥의 방>에서도 타인과의 소통과 대상에 대한 진실한 이해, 언어로 그걸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 변함없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진실로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순간의 인상으로 타인에 대한 의견을 갖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견 또는 인상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대상에게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순간은 지나고, 모든 것은 변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남겨질지도 모른다. 삶이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그림자의 행렬이라고 울프는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그림자를 열렬히 껴안으며 잠시 존재하는 찰나의 것을 붙잡으려 한다.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될지라도 그런 방식으로라도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손을 뻗고, 닿고자 애쓰는 과정 속에서만 삶의 의미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수백만의 책장처럼 무수한 순간들을 넘기며 삶을 산다. 무엇을 찾으려는지 우리 스스로도 모른 채. 어쩌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편들, 삶의 편린들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거기서 각자가 어떤 인상이나 의미를 그러모으려 애쓰는 것은, 잠시나마 우리의 존재가 또렷하게 다가오고 빛을 낸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떤 순간들 속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친 삽화들, 마치 우리가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면 마침내 우리가 찾던 걸 찾기라도 할 것 같은 책 속의 그림들이다. 모든 얼굴, 모든 가게, 침실의 창문, 술집, 어두운 광장이 우리가 그렇게 열에 들떠 넘긴 그림인가-무엇을 찾으려고? 책도 마찬가지다. 그 수백만의 책장을 넘기면서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가?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책장을 넘긴다-오, 여기 제이콥의 방이 있군.”(p.138)

<제이콥의 방> 버지니아 울프, 김정 옮김, 솔 출판사




울프는 타인과의 소통, 혹은 타인을 이해하는 방편으로서 편지를 쓰는 일, 즉 말하려는 시도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 자신이 쓴 편지 봉투가 다른 사람의 탁자에 놓인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빨리 우리의 행위가 별개의 것이 되어 낯설게 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말하려는 시도 말이다. 이 유서 깊은 편지라는 존재, 무한히 용기 있고, 버림받고 그리고 잊혀지는.”(p.131) 이는 일견 그 방식에 회의적으로 접근하는 듯 보이지만 뒤이어 “편지가 없다면 삶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덧붙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 시도하고 있는 것들에 의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울프의 질문처럼 진실함은 순간에만 존재하는가? 진실은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이고 우리는 매 순간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애를 써 볼 따름일까? 그럴지라도 무언가에 닿기 위해 무수히 시도하면서 삶을 축적하는 수 밖에 없다. ‘존재의 순간’에 닿고자 하는 노력이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있게 할 테니까.




‘제이콥의 방’이라는 표면적 이미지에 갇혀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면 이 소설을 읽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 소설에서 '방'은 '자기만의 방'으로 가기 위해 타인을 통해 자신(여성 인물들의 내면 또는 욕망)을 들여다보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 소설의 분량 대비 지나치게 많은 인물의 등장, 주요 인물로 제시된 여성들이 충분한 무게로 구축되지 못한 애매함, '제이콥'을 전면에 내세운 구조 등이 소설과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졌던 주제들을 통해 소설의 의미를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와 타인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는지, 진실한 소통이란 가능한지, 시간 속에서 순간과 찰나가 지니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존재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 영원히 답을 내릴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을 언어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던 울프의 목소리는 명백히 존재한다. 불분명한 주제 의식을 쫓느라 힘겨웠지만 울프 본연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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