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칼 같은 글쓰기’로 잘 알려진 아니 에르노의 문학은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어 상처에 다시 칼을 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녀가 채택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르는 ‘기억에 대한 주관적 시선’은 있을지언정 ‘거짓’과 ‘허구’는 없다. 그렇기에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충격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상처를 바라보다보면 이내 자기 내부의 어딘가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장이란 부모의 세계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부정과 의심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뿌리와 과거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과정은 일정 부분 수치심과 부끄러움, 죄책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아니 에르노의 첫 소설 <빈 옷장>에는 파리 외곽, 도시의 끝에서 빈민층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드니즈 르쉬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소녀는 사립 학교로 진학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학교와 선생님, 중산층 가정이라는 청결하고 예의바른 세계는 소녀에게 자신과 부모가 속한 곳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세상이 더 우월한 세계와 천박한 세계로 나뉘어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그녀의 고통스런 자아 분리는 시작된다.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인정받고, 독서에 빠져들면서 소녀는 상상하기를 통해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자신이 ‘다른 여자애가 되는 것’을, 자신의 부모가 고상하게 바뀌길 상상한다.

 

 

 

“어쨌든 그들은 작은 소매상이자 동네 카페 주인, 벌이가 변변치 않은 초라한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것을 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음탕한 년이 되는 것도, 숨기는 것도, 존재 자체가 순수한, 가볍고 자유로운 반 친구들 앞에서 더럽고 무거운 여자애가 되는 것도 이제 그만 충분하다. 나는 부모님을 더 무시해야만 했다. 모든 죄, 모든 악.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나뿐이다.”

p.113, <빈 옷장> 아니 에르노, 신유진 옮김, 1984 books

 

 

 

세계가 두 개로 나위어 있음을 알게 된 소녀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온다. 그들을 무시하고, 학업에만 몰두한다. 성에 눈뜨며 자신의 욕망을 알아간다. 바칼로레아를 통과해 집을 떠나 대학 사회에 발을 들이고 부르주아 계급의 취향을 흡수한다. 고급 문학과 철학의 세계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세계가 있던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층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낙태시술을 받는 처지에 놓인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쏟아지는 고통을 홀로 겪으며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다시, 천천히,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나는 둘로 나뉘었다. 바로 그것이다. 내 부모님, 소작농 가족, 노동, 학교, 책, 보르낭들. 여기도 저기도 아닌 그것이 증오를 키웠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원했다고 해도, 나는 그들처럼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너무 늦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저 애가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 역시, 어쩌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이었다면, 그 부르주아들, 그 좋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금 뱃속에서 내 수치심의 조각들을 힘겹게 꺼내는 것이라면. 나를 증명하기 위해, 구별되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면……임신 그러니까 그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p.214~215

 

 

 

드니즈 르쉬르’를 둘로 나뉘게 하고 선택을 하라고 강요한 것은 사회와 문화였다.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고, 더 나은 곳을 향해 거짓된 자아를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그들이 소녀의 마음에 증오를 자라게 했다. 부모에 대한 증오는 죄책감을 동반했다. 그러한 요구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에서부터, 인종과 계층, 종교적 시선으로부터,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회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맞추어 가라고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그것은 여성에게 더 억압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빈 옷장에 얼마나 많은 욕망과 자신의 가면을 벗어두어야 했던가. 하지만 자신이라는 진실한 옷을 입고 온전하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나는 늘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불편해하는 나 같은 여자아이가 또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배를 움켜쥐고 두려워하고 있는 나 같은 여자아이가 또 있을까. 상상할 수 없다.”

p.76

 

 

 

“책은 그런 일에 대해 침묵한다.”(p.9) 문학과 책은 부모에게 애증을 느끼는 자식에 대해, 성적 쾌락을 탐하는 여성과 상위 계층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 낙태라는 낙인과 그 고통에 대해, 미화하거나 침묵해왔다. 아니 에르노는 <빈 옷장>에서 이 모든 침묵에 저항한다. 그의 자전적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이 "나는 늘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고 비밀스레 품고 있던 의구심을,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소산임을, 개인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보편한 문제임을 폭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고 경악하면서도 알 수 없는 위로와 다행감을 느끼며 자기만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성장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아니 에르노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여러 번 자신의 세계를 파괴했다. <빈 옷장>에서는 자신의 유년기를 파괴하고, <얼어붙은 여자>에서는 부르주아의 세계와 모성이라는 세계를 파괴한다. 그는 끝없는 글쓰기를 통해 세계를 파괴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나아갔다. 어떤 허울도 없이 ‘아니 에르노’라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문학이라는 ‘진정한 장소’를 찾기 위해.

 

 

 

우리가 닫아버린 빈 옷장의 문이 열린다. 간신히 그 어둠 속을 가늠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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