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파리와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화려한 조명 너머엔 비참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극빈층 사람들이 있다. 사회라는 울타리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극도의 굶주림을 모면할 정도의 음식과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의 보호소만 제공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사회에서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근본적 지원은 없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넘을 수는 없는 선이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선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자는 기본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채 인간 이하의 취급에 내몰리는 것이다. 간이 숙소나 구호소에서 그들이 받는 처우는 감옥에서의 것과 비슷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은 박탈당한다.
‘떠돌이’나 ‘노숙자’, ‘극빈자’라는 단어가 가진 허상과 그릇된 이미지에 대해서도 소설은 비판한다. 교육과 사회적 통념으로 강화된 부정적 이미지가 이들 단어를 맴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바닥 생활에서 마주했던 군상들은 사회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면면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게으르거나 방탕하다’, 혹은 ‘포악하거나 위험하다’는 이미지는 교육에 의해 주입된 허상이라 주장한다. 천성적으로 너그러운 '패디'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했던 '보조', 빌린 담배 꽁초를 갚으며 기분좋은 웃음을 짓던 스코티등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적 면모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들은 개별의 성격과 취향을 갖춘 누구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현 시대 빈민층이나 노숙자 등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