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곰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7
이기훈 글.그림 / 리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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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미지를 보면 상처 입은 자는 살아남는 방법을 알기에 되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큰 고통을 겪은 이의 큰 용기를 보게 됩니다. 두 영화를 통해 본다면 인간은 고통의 경험 속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직장이든, 학교든 그 어느 곳이건 불공평하다는 을 얻는 순간 이리 저리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이익인지 손해인지 계산할 때 범위가 백년 단위는 아니겠지요. 당장 오늘, 며칠, 몇 달......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작은 일이지만 하루, 한번의 손해에 펄펄 뛰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이런 경우 늘 선택의 잣대는 우리 시대 대세는 무엇인가겠지요. 옹색함이 대부분인 우리들 가운데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양철곰은 그 듬직함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양철곰은 부서지고 삐걱대고 곧 망가질 것 같습니다. 양철곰이 대세가 아닌 것은 표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곰이 자리한 마을도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신비의 열매를 먹으면 황금으로 변한다는 황금별로 이주할 길 없는 소년은 양철곰에게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합니다. 이주 열차를 달고 떠나간 이들처럼 마지막 열차를 달고 떠나길 종용합니다.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물을 계속 퍼붓고 있는 양철곰을 소년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겠지요. 양철곰이 지키던 마지막 녹색 숲이 파괴되고 많은 새들의 보금자리였던 양철곰이 무너져 내리고 소년은 절망감에 눈물짓습니다.

 

양철곰에 안겨 눈물 짓던 소년은 그 몸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봅니다. 파괴된 마지막 녹색 숲을 대신하여 양철곰은 자신이 숲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양철곰이 숲이 되자 사람과 물고기가 다시 찾아옵니다. 숲이 없는 도시가 황량한 디스토피아의 세계처럼 보인다면 녹색 숲이 있는 마을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소년은 아마도 황금별로 이주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곳, 마지막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양철곰은 새들의 보금자리로, 식량 저장소로 역할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치명적인 물을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의 뚜띠 아저씨처럼 스스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며 자신이 자리한 곳에 새싹을 피웁니다.

 

이기훈의 양철곰은 글자 없는 그림책입니다. 글자는 없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짚어가며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므로 초등중학년 이상이 적합합니다. 특히 환경문제나 헌신, 신념 등의 의미 등을 생각해볼 때 함께 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2010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책으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해 시청각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이 환영할 만한 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주어질 때 반응이 어떤지 궁금한 책입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이므로 장면마다 말풍선 넣기나 장면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기 등의 활동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책 뒷면 <볼로냐 일러스트 위원회 추천글>에서 한국 도시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고 다만, 숲이 상징하는 쉼의 의미가 사라진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도시 풍경을 재현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 루쉰의 책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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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초상화
유지연 지음 / 이야기꽃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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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서 인간 여자의 모습을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수년 전 문득 깨어보니 초저녁 잠이 많은 엄마가 말짱히 깨어있으셨습니다. 엄마는 옷장을 몽땅 털어 프리티 우먼 옷갈아입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안을 런웨이 삼아 걷기도 하고 턴도 하시고 앞태도 보고 뒤태도 보시는 겁니다.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마을 사람들과 그 흔한 싸움 한번 없고 맏며느리로 큰 웃음 웃는 손 큰우리 엄마는 무엇을 좋아할까, 또는 무엇을 싫어할까? 오남매를 키우면서 싫어한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은 적이 있으셨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사람인 이상 욕망이나 희망이 없진 않을터이니 엄마는 생이 주는 대로 받느라 한 세월 다 보내셨나 봅니다.

 

그림책을 보며 엄마를 떠올리니 짠한 마음이 듭니다. ‘엄마미영씨’. 지킬과 하이드처럼 엄마미영씨는 한 존재의 두 얼굴입니다. 엄마인 듯 엄마 아닌 엄마 같은 미영씨?! 대중가요 가사를 인용했지만 우리네 엄마들은 자신과 탈만한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지겹게 반복되는 가사노동으로 가족들을 거둬 먹이고 엄마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짜증받이가 됩니다. 가족의 몸 건강,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감정 노동자 역할입니다. 거기에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어오는 역할이 더해지기도 하겠지요. 지은이는 엄마의 두 마음을 딸의 시선으로 그립니다. 딸이 엄마가 되면 그 마음 헤아릴까요? 딸이 살아온 시절과 엄마가 살아온 시절이 다르니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어쩌면 엄마 또한 자신을 잊고 살아왔을 겁니다.

 

엄마는 딸이 그린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그대로 내려앉은 자신의 모습, 당신이 품고 있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조용한 거부반응이겠지요. 엄마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스스로갖고 온 그림을 딸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와 나란히 놓아둡니다. 알록달록 오롯이 그 모습으로만 살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하지도 않을 자신의 모습입니다.

 

글밥이 많지 않은 그림책으로 엄마의 두 존재는 색상과 크기로 강한 대비를 줍니다. 현실의 엄마는 무채색, 여자인 엄마는 화려하게. 그림의 크기도 다릅니다. 현실의 엄마그림은 대부분 한 장의 반쪽을 넘지 않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엄마는 한 장을 가득 채웁니다. 현실의 엄마가 여행을 꿈꾸자 엄마의 일상은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고 - 장면 크기도 조금씩 커집니다 - 마침내 엄마와 미영씨는 그림책 양면을 활짝 열어 화려한 빛깔로 태어납니다. 무채색과 화려한 빛깔로 구분되던 엄마와 미영씨가 합체하니 무채색 현실에 고운 빛깔 꽃무늬가 들어옵니다. 무채색 엄마는 고운 빛깔 미영씨를 가끔 불러내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겠지요. 늘 그렇듯 엄마는 자식들이 부르면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겠지만, 좋고 싫고가 있는 미영씨일때도 있습니다. 엄마의 낯선 모습에 박수 쳐줄 준비 되셨나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자신의 숨은 모습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 또는 장성한 아들, 딸들에게 추천하고 싶고, 아이들과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우리 엄마와 함께 보며 엄마또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은 책입니다. 6,7세 어린이들에게는 무언가를 꿈꾸는 엄마(할머니?!)를 그린 그림책으로 읽어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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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 2013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 황금사과상 수상작
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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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피로사회, 낭비사회, 위험사회, 탈감정사회, 탈신뢰사회 현재 우리 사회를 말하는 책들의 제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코끼리 뚜띠 아저씨의 코믹썰렁어리버리판타지 기어코기우제 그림책이 무척 재미있었음에도 이렇게 착해빠져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라는 속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 겁 많아 보이는 어리버리한 표정, 지나가는 뱀들보다 작게 그려진 코끼리 뚜띠 아저씨, 어둠 속을 탈출하는 아저씨의 띨빵(?!)한 태도가 완전체가 되어 그렇게 힘들게 길어온 물을 불 난 곳에 왜 주고 난리야, 새들한테는 왜 뺏겨, 이 바보야!’ 이렇게 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뭄에 길어온 귀한 물을 새끼코끼리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었겠지만 불 난 곳을 모른 척 할 수 없는 뚜띠 아저씨의 마음결을 보았으면 좋겠다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게 소중한 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쏟아붓는 그 마음말입니다. 이 마음은 배운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봐주는 있는 그대로의 시선일 것입니다. 사람의 선(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의 힘 말입니다. 나쁜 사람들도 있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만 세상 한 구석 코끼리 뚜띠 아저씨같이 듬직한 사람들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마음의 힘 또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을 길어오는 뚜띠 아저씨의 여정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벼랑에서 떨어지고 벌에게 쏘이고 선인장에 찔리고 불난 개미굴에 물 뿌려주고 여기, 저기, 요기, 조기 조금씩 흘리고(?!) 다니다보니 양동이에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뚜띠 아저씨의 파란 눈물이 마중물이었을까요? 아저씨의 눈물이 번개를 부릅니다. 시원한 음악처럼 쏟아지는 파란 빗방울들. 눈물인지 빗물인지 푸른 바다처럼 쏟아지는 물을 받아 아저씨는 아이들과 시원하게 나눠 먹습니다. ‘몹시 힘든 길이었지만,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휴우~’. 마지막 문장에서 저도 마음을 놓습니다.

속표지, 코끼리들이 복닥대는 오아시스에서 아저씨는 홀로 낑낑대며 물을 길어옵니다. 맨 뒷장  표지, 아저씨와 아이들은 함께 물을 길어 돌아갑니다.

 

노인경 작가의 그림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네요. 소심하고 겁많아 보이는 주인공 코끼리는 캐릭터가 제대로 잡혀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성격인지 전해져 옵니다. 겁많은 코끼리 아저씨의 고단하고 힘든 여정을 그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지나가는 뱀들에게 위협당하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코끼리 뚜띠 아저씨. 권력도 허세도 없이 자신이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슴을 적십니다. 수묵화의 맑은 선과 여백으로 이뤄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다 결정적 장면에서 파란 빗방울이 억수같이 퍼붓습니다. 한바탕 크게 울거나 웃고 난 뒤처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진부한 이야기일까요? 21세기 스마트 시대에 무슨 얘기냐고요? 문명의 기기들은 스마트해졌지만 삶은 고단함과 초췌함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 영악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계산적인 태도를 숭배하는 시대이기에 좀 답답하고 느리고 가끔 눈치 없어 짜증나는 우리들의 모습에 한 표를 더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선함으로 세상이 조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진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더 멀리 보았을 때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지혜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노인경 작가의 말처럼 가끔 겁이 많아 멋지지 않고 가끔 느려 답답하고 가끔 눈치 없어 짜증났던아빠의 모습인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밥이 많지 않아 그림을 이해하는 4,5세부터 볼 수 있고 나눔의 마음이나 일하는 수고로움, 부모님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 초등 전학년까지 이용가능 합니다.

2013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 황금사과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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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문학동네 청소년 27
유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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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부끄러움을 알게 되는가? 살다보면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과 누군가에게 당하는 모욕감이 분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길에서 꼭 학교 친구를 만난다. 여자애들과는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데 남자애들과 만나면 막걸리, 양은주전자, 걸을 때마다 주전자에서 새어나오는 막걸리, 양은 주전자를 든 내 모습이 조각조각 분리되어 땅으로 꺼지든가 아니면 하늘로 솟구치고만 싶었다. 남자아이들이 나와 양은 주전자를 보며 실실 웃었을 뿐인데 부끄러움과 모욕감 사이에서 내 마음은 갈팡질팡하였다. 그 어린 나이에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새어 나오는 막걸리에서 삶의 누추함과 누추함의 현신 그 자체인 나를 느꼈나보다. 바야흐로 자의식이 뭉게구름처럼 커지는 나이였을게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를 부끄러워하며 비교지옥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는 곧 벌어질 막걸리판의 전조이다. 기분좋게 시작된 막걸리판은 곧잘 고함과 욕설이 오갔고 마지막은 또 언제그랬냐는 듯 훈훈하였다. 그 시절 우리 마을의 삶은 누구든 별다르지 않았으나 뭉게구름 자의식덩어리 는 그 세계와 불화’1)하였다. 아이는 자라 마을을 떠났고 그 길에 살며 존재를 부끄러워하던 시절은 어느덧 잊혀졌다. 잊었다 생각한 그 느낌, 그 마음, 그 불화를 알알이 소환한 책이 나왔다.

마지막 이벤트의 저자 유은실의 첫 청소년 소설 변두리. ‘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로 책은 시작된다. 우리는 과거, 현재 그리고 변함없이 미래에도 변두리, 경계에 선 삶을 살 것이다. 몸도, 마음도. 서울 변두리의 신산하고 누추한, 그래도 꿈과 기대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던 시절, 부끄러움과 모욕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수원이 주인공이다. 갈팡질팡 수원의 바램은 소박하다. 술만 마시면 남의 빨랫감을 고이 집어오시는 아버지가 변태 이미지를 벗는 것, 방문을 열면 도로가 훤히 보이는 집에서 이사하는 것,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선지 들통을 무겁지 않냐고 물어봐 주는 정구오빠에게도 근사한 별명을 하나 지어주는 것. 그 소박한 소망은 이뤄보지도 못한 채 밉상 영미 앞에서 동생 때문에 선지 피바다속을 헤엄쳤다. 그 순간 느낀 부끄러움과 모욕감을 동생에게 화풀이하였다. 수원은 술만 마시면 욕설을 날리는 지긋지긋한 아빠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보았다. 거짓말, 허세, 빈곤, 결코 면역되지 않는 모욕감과 저절로 운동이 되는 마을 뒷산, 초경과 몽정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아까시 나무 눈꽃날. 수원과 그 이웃들은 꿈꾸는 중산층의 삶에 다다르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곧잘 악다구니로 머리채를 잡고 드잡이를 하지만 그래봤자 이웃, 그래도 이웃인가’. 한푼이라도 벌어보려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는 이웃 아주머니를 위해 수원은 수레를 밀고, 수원의 엄마는 정구 오빠네를 위해 상숙이네에 부탁을 하러간다. 삶의 한없는 하찮음을 견디는 힘은 서로를 위해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있을 때 생겨난다.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벌하는 비교 지옥의 삶은 누추한 서로의 일상을 받아들일때탈출할 수 있고 그렇게 변두리는 우리 삶의 중심이 된다”. 

 

1)작가의 귀향/김진경(변두리 해설) ...‘가난에 백정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수원의 자아는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세상과 불화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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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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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영웅으로 추대된다고 그들은 구원되지 않는다. 영웅이라는 호칭은 현재를 지배하고 싶은 사람이나 좋아한다.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죽은 사람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는 부질없는 명예에 불과하다.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은 그들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요란한 소동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기억에 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86>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댓글 하나. ‘올해의 목표, 살아남기’. 우리 상황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인지라 공감하면서도 서글픈 현실에 마음이 짠해진다.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는 연이은 대형 참사에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던 힐링은 맥을 못추고 있다. 위로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문제나 사건을 공유하거나 설명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노명우의 좋은 삶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특별한 삶과 달리 좋은 삶은 제로섬게임의 관계가 아니라 화수분貨水盆처럼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호혜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좋은 삶이 화수분의 관계를 통해 얻어질 때, 특별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좋은 삶을 감히 꿈꿀 수 있다........좋은 삶은 선물 받을 수도 없다. 좋은 삶은 삶의 오랜 습관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특별한 삶과 달리 좋은 삶을 어떻게 보장되는가?

 

 ‘좋은 삶은 착한 삶과 동일하지 않다.’

 

지은이는 좋은 삶은 착한 의지만으로 또는 술수에 능한것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좋은 삶은 한편으론 영리하되 영악하지 않은 지혜로움을 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선함이 지나쳐 주어진 모든 것들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태도와 거리를 둘 때 가능하다며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처세술좋은 삶을 향해가는 비법이라는 의미의 복원을 꿈꾸는 지은이는 상식’, ‘명품’, ‘이웃’, ‘성공’, ‘게으름25가지 주제어로 세속적 삶을 설명하며 독자들이 처세술의 달인이 되기를 응원하고 있다.

 

상식 편의 한 대목.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사실로서의 상식은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한 사회가, 그 사회의 일원들이 오직 하나의 상식만을 틀어쥐고 내달릴 때 상식은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십 여 년 사이 우리의 단 한 가지 상식은 이 되었다. 괴물이 된 하나의 상식은 그 안에 잉태된 또 다른 괴물을 낳는다. ‘좋은 삶에 대한 사회적 사유나 공감은 없고 오직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만 남았다.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니, 등골이 오싹하지 않는가? 공포영화가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을 반영하는 기제라면 우리는 지금 결코 끝나지 않을 공포영화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힘은 좋은 사람들과 기울이는 소주 한 잔과 그들과 나누는 속 깊은 이야기일 것이다. 내 고단함과 너의 고단함이 다르지 않음이며 그것으로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고통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해가 아니라 공감의 시작이다. 고단한 우리, 좋은 삶을 꿈꾸는 우리는, 우리가 견뎌 온 고통의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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