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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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다렸다. 난징대학살을 소재로 해서 일본 우익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의 에세이에서 난징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읽었었다. 그래서 다 기다려서 구입했는데, 왠지 읽으면 안될 것 같았다. 김슨생이 먼저 읽고 너무 재밌고 잘 쓴 글이라며 만족을 표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읽으면 재미없을 거라고도 했다. 여러 이유로 미루다가 이제야 읽었고 역시 재밌었고 역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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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월드. 작가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버무리는 데 탁월하다. 오래 글을 써왔기 때문에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20년 전에 읽었던 그것도 한참 전에 나왔던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그랬다. 그것은 하루키만의 신비한 재능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절묘하게 이어낸다. 이 세계와 저 세계의 틈을 보여주고 그 두 세계가 더는 두 세계가 아닌 세번째 세계가 되게 만든다. 마치 ‘닥터후’의 그 틈처럼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연결된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에서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도 종종 기묘하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딘지 알 수 없고, 무언가 이상하고, 어쩐지 실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종 잡을 수 없고 비현실적이지만 실재하는 것 같은 어떤 세계 속에 잠깐 머물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 생경하지만 매력적인 어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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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괜찮다.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을 준다. 내가 믿어왔던 것이나 정해진 규칙이나 당연시 했던 것들에 대해 과연 그럴까? 아닐수도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정말 중요한 걸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철학적이고 성찰을 동반하는 의문이 아닌 뭐 그래도 별 문제는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말하자면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약간 헐렁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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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뭔가 다른 것을 할 때마다 책이 나를 잡아채는 느낌을 받는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자꾸 딴 짓이 하고 싶다는 점이다. 책을 내려놓고 인형옷을 끄적거리다가 차를 우리다가 맥주를 꺼내고 이런 저런 잡다한 행위들을 한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는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괴리가 줄어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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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서 어떻게 받아들이게 만드느냐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든다. 가치관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내겐 물론이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제 3자, 혹은 의문의 인물에게도 그러리라 여겨진다. 물론 작가의 글을 좋아하고 아니고는 다른 문제다. 그 부분은 확실히 취향의 문제고 개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렵고 짜증나는 글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쉽게 이해시키는 능력은 어물쩡 넘어갈 수 있는 능력과도 좀 닮았다. 요컨대 느슨하다. 얼마든지 다른 것들을 끼워넣을 수 있다. 확대하고 축소하고 확장하고 축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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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30대 남자가 이혼을 하고 겪는 약간 이상한 이야기. 재능은 있지만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 거대하고 어두운 역사가 개인과 그 속한 세계에 조용히 작용하는 이야기. 어쩌면 사랑 뒤에 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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