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회의주의적 이상론자인 나는 ‘너는 나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고 고쳐 읽는다.
주말에 갈비탕을 먹고 걸어오며 아들과 나눈 대화의 마무리는 ‘나는 주인공이다’였다. 에반게리온을 시작으로 천국으로 이어진 대화의 마무리로 적절했다. 자기가 한 참 생각을 해봤는데, 이런저런 이유고 뭐고 필요없이 자기는 주인공이고 나도 주인공이란다. 각자의 삶과 각자의 몫.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내가 한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뭔가 대단하고 근사한 이야기를 꿈꿔서 같다고 했다. 아직 결론도 나지 않았고 내 이야기의 장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인공이면서 들러리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엄청 다양하다. 장르에 따라서 주어진 환경과 등장인물에 따라서 수백, 수천, 수억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 비슷하다. 끝까지 내가 주인공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란 슬프고 안타깝다. 우리는 주인공이고 결말은 주인공에 따라 좌우된다. 주인공인 동시에 작가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
-
삶을 끝내고 싶은 이유는 너무 많다. 하지만 살고 싶은 것은 그저 살고 싶어서면 충분하다. 우리는 여러 문제를 안고 여러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종종 혹은 자주 제발 그만하고 싶다는 욕구를 마주한다. 다시 생각해보자. 죽음이 단순한 끝이고 종료라고는 누구도 확인시켜준 바가 없다. 훨씬 지독한 것이 훨씬 길고 끔찍하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
감각적이다. 문장이 늘어지지 않으니 휙휙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거창하게 쓰여지지 않아서 누구를 대입하든 공감이 가능하다. 이 시대의 속도와 닮았다. 나는 휙휙 읽으며 이만큼 왔는데 얼만큼 달라졌나를 가늠해본다. 나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은 과거의 내가 가진 검고 어두운 느낌이 많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색이 바뀔만큼의 변화라면 나는 꽤 달라졌고 더 달라질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달라진다. 변한다. 가 무조건 좋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변화를 기대한다면 넘어질 것 같은 상태로 페달을 밟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