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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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책을 단 두권 읽었을 뿐이다. 작가를 깊게 알지 못하고 그저 유추했을 뿐이다. 물론 대부분 그래왔다. 이 시리즈를 통해 좀 더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만나면서 깊게 알고 싶어지는 일이 많다. 카뮈의 전집을 사야겠다고 더 읽고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가장 좋았던 것을 꼽자면 니체와 카뮈다. 두 거장의 공통점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죽음과 삶 그리고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 것이랄 수 있겠다. 물론 그런 작가들은 많은데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관찰과 발견을 통해 도달하는 종착지가 중요한 것이다. 시작점과 과정은 비슷하나 종착점은 조금 다르다. 니체와 카뮈 중에서 카뮈로 기우는 까닭은 그 종착점 때문이다. ‘가로되 사랑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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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카뮈의 과정을 3단계로 표현했다. 부조리-반항-사랑. 이 3단계가 내게도 있다. 추구하는 것과 실상 사이의 간극이 늘 자괴감과 번민을 가져오지만 그 추구하는 바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실상에 대한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멈출 생각은 없다. 그 노력이 괴롭고 아픈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누구를 편들거나 비난하기가 어렵다. 누구를 미워하기도 믿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두의 사정을 몰라도 그 상황을 몰라도 애쓰지 않아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서 모두를 포용하거나 늘 평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못할 일이나 이해못할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이해하다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 순간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다. 카뮈의 사랑과 내가 말하는 사랑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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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의 모든 것에 동의하고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이 완전무결하고 흠없는 상태의 감정은 아니다. 어쩌면 단어의 정의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왜’로 시작해서 ‘그래서’를 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이르는 과정을 멈추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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