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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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읽은 책의 또 다른 재미라면 책 주인이 읽던 중의 흔적을 만나는 일이다. 땅콩 껍질 같은 것의 좀 큰 눈꼽 크기의 잔여물과 설탕부스러기가 눌러 붙은 작은 흔적, 손톱으로 살살 긁어내며 조금 웃었다. 밑줄을 그을 수 없어 대신 끄적거렸는데, 그조차 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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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좀 생각해봐야겠다고 대답하겠지만 작가의 소설을 읽는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악의 연대기 3부작? 뭐 그 비슷한 이름이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어둡지 않았다. 액션 활극이래도 좋겠다. 물론 그 역동적인 상황들에도 그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세계들이 담겨있다. 어쩌면 윤리적인 아니 지극히 사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에 대한 인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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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중심의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유정 작가의 기질이 내 취향이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시끄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시끄러운 사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기질이 너무 닮아서 부담스러운 것이다. 친구할 것도 아니면서도 그렇다. 내 기질과 성향, 나는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타심과는 다른 어떤 슬픔에 기초하면 가능하더라. 아니 나를 사랑할 수 없어서 더욱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몸부림도 가능하더라. 왜 또 전혀 다른 이야기와 주제에서 내 이야기로 흘렀을까, 아직 덜커서 자기중심적이라 그렇다. 나는 대체 언제 자라나, 때를 놓쳐 너무 더디 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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