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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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그로커룸에서 머리를 맞대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거기에서 나와 모두 잠든 사이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을 누볐던 그 시간이 뭔가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그렇게 서로가 특별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이 멈춰져야 하는 데도 일종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기 자신만 이 공간에 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힘의 간섭을 무화시키며, 차와 자신과 그것을 이끄는 동력만 감각하는 물아일체의 집중력이었다. 밖은 캄캄하고 차들은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간격을 유지했다. 그 사이를대기중에 은은하게 떠 있어 무게와 부피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안개가 메웠다. 나는 장인이 주는 뭔지는 몰라도 남자에게 그렇게좋다는 정체불명의 과실주를 받아 마신 터라 끓아떨어졌는데 비몽사몽간에 기가 말하는 걸 들었다. 뭐야 저 차들을 좀 봐, 저렇게다들 안개등을 켜고 가니까 꼭 별빛 같잖아.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집까지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이 곡예운전이 대체 어떻게끝날지도 모르는데 기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동면을 지속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은 다 잊은 봄날의 곰처럼,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상실뿐이라는 것을 일찍이알아버린 세상의 흔한 아이들처럼.

나는 담요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그 기적의 길을 걷지 못한 채 끝나는 여름 바캉스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몸살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지금 저 광경처럼 아주 거대한 반구 모양의 세숫대야에 불과하다면 손을 담그고 마구 흔들어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함께, 그런 맹렬한 적의와 분노로 이제 모든 게 철저히 망가지거나 훼손되어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가 뭔가를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느꼈다. 뭔가를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다. 견뎌야 하는 것은 삶이었고 비닐봉지의 무게였고 호박이었고 사과였고 운이 좋다면 바나나였고 아직 이름은 알 수 없는 시든 푸성귀들이었다. 걷다가문득 서서 다 죽어버려라,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내지는 곧 다 죽어버릴걸,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 곧 가족 중한 사람의 비참한 죽음 — 그는 그것에 대해서 평생 단 한 사람에게만 털어놓았을 뿐이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 이 떠올랐고 공포가 밀려들면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가족이 어떤 형태로든 불행을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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