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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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은 난파선이다. 저 깊은 바닷 속 가라앉은 난파선. 그 난파선 속의 기억을 고백하는 이야기랄 수도 있고 그 고백의 후유증이랄 수도 있겠다. ‘친밀한 이방인’이 갖는 적절한 거리감을 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거짓말들을 안다. 거리감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 켠엔 늘 고백의 충동과 토해내는 울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내 기억 속에도 있다. 거짓말을 반복하고 들킬 즈음 도망치고 다른 거짓말로 옷을 지어 입는 마음을 안다. 그래도 결국은 만나서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릴 고백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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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픈 마음과 드러내고 싶은 마음 사이에 무엇이 있내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라고 대답하겠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거짓말을 만들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고백을 부른다.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답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뿐인데 그 답을 손아귀에 쥘 수는 없다. 그 답에 이르는 길을 우리는 알 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과 고백을 반복한다. 철저히 감추고자 돌고 돌며 숨고 숨어도 결국은 토해내고 마는데 돌고 돈 만큼 숨고 숨은 만큼 그 후유증이 커서 감당하기 버겁다. 다시 능숙하게 가면을 쓴다. 그 가면 뒤에서 불안에 떨며 울지언정 가면 만큼은 그럴싸하게 치장한다. 때론 나조차도 감쪽같이 속아넘긴다. 괜찮은 것처럼 착각하고 만다. 그 안도의 순간은 결코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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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계를 좁혀간다. 들키고 말 거짓말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거리를 재고 눈치를 살피고 적절한 분량의 고백을 하나씩 던지며 고비를 넘긴다. 지극히 협소한 관계 속에서도 전전긍긍한다. 사실은 착각이 아닐까 하고 움츠러든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부럽다. 고백할 것이 적고 고백을 거절당한 경험이 적은 사람들. 아니 그보다 거짓말할 필요가 덜했던 사람들이 미울만큼 부럽다. 어디서건 얼마의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쓸쓸해진다.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결국 누구나 혼자가 아니냐며 위무한다. 하지만 역시 짧은 안도가 아닌 긴 평안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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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다행인 것은 어두운 후유증을 가진 그 고백이 누군가에겐 용기를 준다는 사실이다. 그 용기는 새로운 삶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후유증을 견뎌낼 용기가 새로운 삶에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래, 그 부분을 기억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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