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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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어떻게 꺼내 놓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 어떻게 이야기가 되느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불가능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아주 가끔 한 번씩 그래도 되는대로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나를 응원한다. 말이 흘러넘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욕구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뭔가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반 걸음쯤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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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누구에겐 너무 빤하고 뻔해서 지긋지긋하고 저 정도면 준수한 편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무슨 말도 안되는 과대망상같은 이야기냐는 사람 사이. 이 글도 그럴 수 있겠다. 좋은 엄마와 좋은 여자, 나쁜 엄마와 나쁜 여자가 같은 의미가 아닌 것처럼 단정할 순 없겠다. 읽는 내내 너무 알겠고 알겠고 알겠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종종 이러다가 정말 산 채로 썩고 곪아 문드러지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나 정도면 편하고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너무 바라는 사람, 기대치가 저 꼭대기인 사람 같다가도 이렇게나 잘 참는 나를 칭찬하기도 한다. 어느 면만 어떤 부분만 진실이 아닌 모두 진실이고 그래서 괴롭고 그래서 견뎌진다. 그래서 웃고 그래서 울 수 있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저 모두 좀 덜 아프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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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민감하다. 그 부분이 사람을 싸우게 한다. 그 외에도 민감한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에 민감한 사람들은 끝없이 싸울 수 밖에 없다. 어느 하나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고 견뎌지지 않고 늘 아프다. 그런데 사실 이유는 하나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것. 혹은 사랑하려 하는 것. 그래서 자꾸 생각하고 이해하고 싶어지고 뭐라도 하려든다. 결국 싸우고 만다. 만신창이로 죽을 것 같은데도 싸우고 만다. 그거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싸운다. 고작 그것뿐이라 미안한 마음으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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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문장에서 나는 피부가 투명한 사람을 떠올렸다. 존재가 사라지는 사람이 아닌 투명한 겉껍질 때문에 뼈, 핏줄, 근육, 장기, 상처, 생각이 모두 보이는 사람. 피부와 화장 대신 비틀어지고 시뻘겋고 움품꺼진 뼈와 근육의 움직임이 모두 보이는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러는 징그럽달 수도 있고 더러는 약점을 잡아 공격하려 들 것이다.
나는 싸울 때마다 실금이 생기는 것 같다. 현미경으로도 안보일만큼의 실금이 자잘하게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 그 실금들로 인해 당장 부서지는 일은 없겠으나 언제고 온 몸이 실금 상태가 되면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산산히 바스라질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투를 걸치고 스카프를 두른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완화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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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고 이해하며 곱씹다가 비슷해도 역시 다르구나를 3장에서 느낀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과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너무도 달라 그 전까지의 같음이 놀랍게 느껴진다.

#싸울때마다투명해진다 #은유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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