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와 아시아의 만남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어쩐지 동양은 오래된 옛것의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나? 한국의 SF 소설들을 종종 읽는다. 배명훈이나 듀나 같은 작가들의 소설도 꽤 읽었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더라. 그래, 책 제목. 라디크 사람들. 어쩐지 동양의 인상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로 포장된 과거의 향기 같은. 폐쇄적인 동양의 과거들 탓일수도 있고 너무 급하게 과거를 땜질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SF와 아시아가 함께 담긴 이 책이 켄 리우라는 작가가 그가 받은 상들이 더욱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반갑기도 설레기도 한다.
_
소설집의 이야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좋았다. 일단 재밌고 새롭고 진지했다. 역시 어떤 장르건 간에 감정이 오래 남거나 생각이 깊어지는 이야기들이 좋다. 나는 대체로 책 고르기에 실패(?)하지 않는 편이다. 50권 중 하나 정도? 공들여 고른 보람을 느낀다.
_
마지막 이야기에서 작가의 갈등과 과거와 미래를 본다. 어쩌면 작가의 눈높이가 성장곡선처럼 올라가는 순서일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땅 같은 거라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존재를 잊지만 한시도 떨어져 살 수는 없다. 고개를 숙이면 보인다. 어느 순간 삶이 휘청할 때 딛고 있는 발 밑이 단단한지 불안해질때, 이대로 괜찮은지 혼란스러울 때, 박차고 도약해야 할 때, 주저앉아 발을 구를 때는 단단한 지반이 필요하다. 그 지반이 연약하고 무너지기 쉽고 질척거린다면 우리의 삶이 과연 괜찮을까? 그래서 우리에겐 과거를 확실히 하는 것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목 잡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딛고 뛰고 달리기 위해선 지반을 확인하고 보수하고 때때로 돌봐야한다. 너무 쉽게 잊는다. 든든한 땅의 존재가 나를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고 조금씩 나아갈 수 있기만을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