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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하여 - 불안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
앤드리아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아니 2학년 봄.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것에 대한 처방은 마음을 편히 가져라였다. 그 뒤로 방치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졸업 전에 죽을까봐 무섭다고 했고 나도 최소한 30살 이전에는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한 태도는 나를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것을 할래. 그 다음은 포기하고 잊는 방법을 택했다. 한 2년 독하게 시달리다가 점점 좋아졌다. 하고싶은 대로 했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완전히 괜찮은 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괜찮다. 한 십년 나 자신에게 골몰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왜 이런지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거듭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후로는 타인에게 골몰했다. 그 무수한 타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에겐 어떤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극복해가는 지에 대해 거듭 생각했다. 그 동안 무수한 잘못된 선택을 하고 감당하며 살아왔다. 40살이 된 지금 앞으로 남은 몇 십년에 대해 천천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를 향한 시간들에서 겨우 빠져나왔고 현재를 버틸 수 있게 되었고 슬금슬금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 대해 완전히 만족할 순 없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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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도움이나 돌봄이 없이 시간을 들이고 잘못을 반복하며 내린 결과가 지금의 나다. 고통스럽고 괴롭고 불안해서 무엇이든 생각해야했고 원인을 찾다보니 나 자신으로 좁혀졌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괜찮아지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문제를 헤집고 확인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습관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름의 해결에 효과적이라 믿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해결한다.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포기한다. 소거하고 집중한다. 어떤 부분들은 소거가 가능하고 어떤 부분들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과감해진다. 괜찮다,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타인의 관습이나 태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법과 도덕을 기준으로 큰 문제만 없으면 된다. 그런 것들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다른 것과 틀린 것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안전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들 그렇게 살고, 살아가는 데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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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것은 문제를 직시할 수 없을 때이다. 영원히 매듭을 풀 수 없다면 그 문제가 나를 약간 괴롭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모르는 나로서는 참담하다. 그러다보니 문제를 드러낼 수 없는(타인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조차-) 사람들이 안타까워졌다. 오지랖이라해도 어쩔 수 없다. 그 고통과 불안을 아는데, 내가 아는 해결책은 하나 뿐이라서 자꾸 속상해졌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문제가 엄청난 것은 아니다. 아니 삶을 뒤흔들고 있으니 엄청나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해결하려면 문제를 찬찬히 뚫어지게 들여다봐야한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답을 기대할 순 없다. 치우고 미루고 덮어두는 것이 과연 해결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부딪히지 않은 채 포기가 되는 것인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아마 타인에게 골몰해도 나는 타인이 될 수 없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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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을 불안장애와 함께 살아온 작가는 천천히 되짚어간다. 아마도? 어쩌면? 하고 시작점을 찾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원인과 증거를 찾아간다. 나 나름대로는 잘해왔다는 칭찬을 들은 기분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혼자 다 해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은 아니라도 분명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덕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도움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 같은 문제가 아닐 뿐 나 역시 그들에게 약간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가학적인 태도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오해를 산다. 트러블메이커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오해와 비난을 내가 애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받는 것이 속상할 뿐이다. 하지만 역시 입장의 차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아는 방법이 한가지라서 안타까울 뿐이다. 나따위 개의치말고 자신의 방법을 찾으라고 천번쯤 말하고 싶다. 나는 모르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백번쯤 덧붙이고 싶다. 당장은 눈가림이 가능해도 그것이 당신의 삶을 흔들고 괴롭힐 것이고 그것이 머릿속이 아닌 실재의 고통이 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의외로 별 것 아닌 문제일 수도 있다고 지금 눈 딱 감고 해결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이래서 내가 문제다. 내가 좌우할 수 없는 것에 지나치게 관여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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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불안과 함께한 삶을 스스로 납득하고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의 정보와 근거를 찾아다닌 게 아닌가 싶다. 다짐을 포함한 기록이다. 작가는 꽤 심각한 증상들과 함께 살아왔다. 해결되진 않았지만 요령이 붙었고 어느정도 감당하게 되었다. 작가의 그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