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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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만 존재할 것 같은 마추픽추 외엔 아는 것도 없는 익숙하고 희미한 나라의 낯선 시인을 만난다. 시인을 만나다보니 그 시인의 나라에서 끔찍한 순간들이 있었을 거라고, 아픈 사람들이 넘쳐났을 거라고 알지도 못하는 역사를 기억해낸다. 더 먼 옛날의 그림도 기록도 찾기 힘든 과거의 나라같던 페루에 사람이 나고 살고 죽고 몸부림쳐온 것을 덥석 집어들고 찬찬히 쳐다본다. 그래서 그렇게 울면서 시를 쓴 건가-하고 이해하는 척 해 본다. ‘한의 정서’를 교과서에서 배운 나는 ‘한’이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먼 타국에도 잔뜩 있구나 하고 주억거린다. 간절한 절망과 참담한 희망을 이리저리 엎었다 뒤집었다 하며 앞,뒤를 고른다. 앞이 나오든 뒤가 나오든 그 반댓면이 사라지진 않지. 거기 바로 찰싹 붙어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주 깜빡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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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나라가 페루냐, 스페인이냐를 묻기전에 정치에도 이념에도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고 어떤 갈등도 혼란도 없이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이 있기는 한가 땅 위에 존재하긴 한가 생각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아프지 않은 가족이 없고 아프지 않은 마을이 없고 아프지 않은 나라가 없고 아프지 않은 세상이 없어서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열심히 혹은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의 평안과 안녕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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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의 발음도 편치 않은 이름이 시인이 낯선 언어로 쓴 시여도 좋았다. 아니 싫었다. 아니 슬펐다. 살아가는 것은 한가지고 사람은 다 한가지지 싶어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 시의 이런 면은 참 근사하다. 주제가 무엇인지 알 지 못해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어딘가 알겠는 그 마음. 그런 마음을 주는 시들은 참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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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백석의 시 몇 개를 읽던 김슨생이 말했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눈동자가 떠오르는 게 있다고 시인의 눈동자 시인의 시선, 시인의 앉음새가 떠오르는 시들. 멀고 투명하든 어둡고 탁하든 날서고 아리든 그런 눈으로 무엇을 좇으며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나는 그 눈길을 따라가며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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