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스물한살에서 스물둘. 어른인 척 하느라 나를 내동댕이쳤던 시기에 너무도 사랑했던 세 여자.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에디뜨 삐아프. 그들의 삶이 지독했던 것만큼 꼭 그만큼 그들의 사랑이 의미있게 다가왔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동경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세 여자의 삶과 제 각기 너무도 다른 방식의 사랑은 의미의 확장같은 개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마저도 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려져 실제와는 다른 형태로 인식했던 것일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녀들이 될 수 없다. 딱히 되고 싶지도 않지만. _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무엇이 좋다고 말하려면 애틋하고 귀하게 여기고 마음이 설레고 이래야 할텐데-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그럴 수가 없다. 그림을 보다가 잠깐 다른 곳을 보고 그 뒤에 힐끗거리고 심호흡을 한 후에 그림 가까이로 다가갔다가 눈을 감고 한참을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그림을 보며 아- 하고 만다. 한 번 보면 그 인상을 잊을 수 없어서 그림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프리다 칼로라는 사람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몇 개의 퍼즐은 잃었고 몇 개의 퍼즐은 망가졌고 몇 개의 퍼즐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_ 박연준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취미가 온라인 서점을 하루 2-3번씩 뒤져보는 거라 작년인가 시집과 에세이가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전혀 정체를 모르는 알 수 없는 책과 작가들이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박연준 시인이다. 이 책을 읽고 박연준 시인에 대해 검색해본다. 최소 한 권쯤 더 읽어야지 하면서도 시인이라 괴롭다고 생각한다. 시는 잘 모르고 어려워서 그냥 덥석 시작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서 만난 시인의 시들은 조금 멀었다. _ 나랑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사람은 거기서 거기니까 하다가 나보다는 훨씬 용감하고 의지적이라고 감탄하다가 나는 그간 뭘했나, 앞으로 과연 뭘 할 수 있나 하다가. 그러다가 집을 치우고 싶은 건지, 짐을 버리고 싶은 건지, 살림을 바꾸고 싶은 건지, 돈을 쓰고 싶은 건지, 도망치고 싶은 건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복잡하다. 온다는 태풍은 흔적도 없다. 태풍 때문에 조금 다퉜다. _ 아, 책이 이쁘다. 코팅되지 않은 표지도 좋고 둥근 모서리도 좋다. 제본이 슬쩍 염려되지만(닳도록 읽지도 읺을 거면서-) 시인이 책을 전부 찢어서 그 중 몇 장만 읽어도 화내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그것 역시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