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 혐오와 페미니즘이 한데 묶여 내게 다가왔고 온전한 내 기준을 갖기 위해 공부해야 했다. 어느정도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어쩐지 불편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서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되는 중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갖기 위해 무엇이 어떻게 옳은지에 대해 이 쪽 저 쪽에서 생각하는 중이다. 이 책 역시 그 일환이다.
혐오표현을 떠나 바른언어에 대해 몹시 까다로운 편이다. 욕설을 비롯한 비속어를 사용하지 말 것, 바른 표현과 바른 표기를 위해 조심할 것 등. 꽤나 까다롭게 군다. 일례로 며칠전 ‘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아들이 놀라며 ‘엄마도 그런 단어를 사용하다니,신기하다’고 했다.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혐오표현에 대해 발작적인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욱 알아야했다. 정확히 무엇이 혐오표현이고 그것이 생겨난 이유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 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불편하던 부분이 일정 해소되었다.
편견이 없지 않다. 아니 꽤 많은 편이다. 단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스스로 편견임을 인식하고 바꾸려 노력한다. 편견-혐오표현-차별행위-증오범죄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해 씌여있다. 얼마나 쉽고 편하게 기준을 바꾸고 적용하는지 그것리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다시금 확인한다.
나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불만많은 사람임에 틀림없고, 윤리적으로 훌륭한 인간도 못된다.
다만 옳은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그것을 행하려 함께 노력한다. 그것이 과연 바른지 거듭 확인하고 내 기준이나 고집에 맞지 않아도 일단 다름을 존중하고자 애쓴다. 나는 완성형이 아니고 그것은 죽기까지 변하지 않겠지만 십원반푼어치라도 나아지기 위해 애쓰며 살고 싶다. 대단한 정의와 원칙은 아니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당당할 수 있길 원한다. 내가 목표하는 것은 성공과 성취를 이뤄낸 인간도 아니요, 남부러울 만큼의 행복을 누리는 인간도 아니다. 늘 전전긍긍하며 갈등하고 넘어지고 못나고 부족해도 당당하고 싶다. 나는 이만큼이고 그것을 원망하고 억울해하지 않으며 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바르고 행복하려 애쓰며 살고 싶다. 모든 인간의 목표는 저마다 다르고 기준 역시 저마다 다르지만 그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미미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부족해서, 갈등할 수 있어서, 조금씩 자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