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 이벽》황보윤(1965~) 지음, 139×196×15mm 324쪽 388g, 바오로딸 펴냄, 2023.---유다인에게 성조 아브라함이 있다면,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창립선조 광암 이 벽 세례자 요한(1754~1785)이 있다. 광암이 남긴 지명유서(指名遺書)가 회한의 물안개 속을 헤매던 다산 정 약용 사도요한을 소환했다. 다산은 자신의 총고해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짓고, 멈추지 않을 한강 물로 광암이벽묘지명에게 세례를 주어 흘려 보냈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장면이 마치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다. 권말 참고 자료 목록을 보니 까닭을 알겠다.---▪︎책 한 권 읽고나서, 두 문단 고르기▪︎˝이벽은 고통 속에서 천주경을 외웠다. 야소의 생애를 묵상하고 야소의 수난을 생각하며 묵주신공을 바쳤다. [•••] 하루해는 길었고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 책•종이•벼루•먹•붓이 없었다. 읽을 수 없고 쓸 수 없는 나날은 위리안치보다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다. [•••]부친은 대들보에 목을 매단 사람이었다. 자신과 너무 닮아 직진밖에 모르는 부친을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성경과 성물이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암 선생 댁에 두고 온 상본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이벽은 점점 지쳐갔다. 날이 갈수록 바깥소식이 간절했다. -289~290쪽- <별채, 갇히다> 중에서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책과 더불어 살았다. 벼루와 먹과 붓이 있어서 비루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학」과 「중용」을 읽을 때는 이벽 생각이 났다. 정약용은 「중용강의보」를 짓고 서문을 썼다.‘위로 거슬러 광암과 토론하던 해를 손꼽아 보니 서른 해가 지났다. 광암이 여태 살아있다면 그 진덕이며 박학을 어찌 비교할 수 있으리오. 옛 의견과 새로운 의견을 합하면 반드시 광암과 일치되었을 것인데 한 사람은 살아있고 한 사람은 죽어 없으니 이 슬픔을 어이하리.‘무인년(1818년)에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희맑던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주름진 얼굴에 검버섯이 돋아있었다.-309쪽- <파초, 살다> 중에서˝---#광암이벽 #황보윤 #바오로딸 #광암 #이벽 #순교자 #소설 #배교#책 #독서 #책읽기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bookstagram #書冊 #冊 #圖書 #図書 #本 #libro #liber #βιβλίο #book<===>https://www.instagram.com/p/CxLCu1nRZpn/?igshid=MzRlODBiNWFl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