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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온 편지 - 밀라노의 숨은 기적 찾기
박홍철 지음 / 생활성서사 / 202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박 홍철 다니엘(1975~) 지음, 140×205×15mm 264쪽 298g, 생활성서사 펴냄, 2022.
https://youtu.be/VFL47_sai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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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재속 사제인 지은이가 이태리 밀라노에서 다섯 해 남짓 동안 유학하는 중 《생활성서》에 두 해 동안 연재한 칼럼 글을 다시 다듬고 엮어 묶어낸 수필집이다. 미술을 공부한 지은이의 눈으로 찾아내어 소개하는 숨은 사연인 만큼 사진 설명과 묵상이 읽고 보는 이에게 더욱 깊은 여운을 준다.
지은이가 이곳저곳 기적 발현지를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처럼 나약하고 겁 많은 사람의 세대는 줄곧 기적을 원해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러한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나타나는 기적이란 치우쳐 기운 상태를 다시 평형으로 돌려놓는 경고이며 치료제이고 백신이겠다.
책 제목이 ‘밀라노에서 온 편지’이나 밀라노에 관하여 직접 언급한 부분은 아래 전체 본문 이백쉰한 쪽 중 백스물네 쪽으로 반절이다. 나머지는 이태리 각지의 숨은 성지를 찾아본 이야기이다.
I장부터 Ⅳ장까지(13~121쪽),
Ⅶ장 중 <세 사람을 위한 하나의 무덤> 암브로시오 성인 (199~207쪽),
Ⅷ장 중 <미소와 눈물의 성모> (209~217쪽).
종신서원 마지막 수련과 피정을 앞둔 2011년 오월 05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아침 숙소를 나서서 미사 하러 처음 가본 밀라노 두오모의 첫인상은 ‘아니 이럴 수가!’이었다. 두오모 건물 옆면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이라,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이었다. <Transformers: Dark of the Moon 2011> 포스터, 바로 우리나라에서 2011년 유월 말에 세계 최초로 개봉을 앞둔 영화 <트랜스포머 3>이었다. 앞면보다 옆면을 먼저 보게 된 두오모. 조금 더 걸어 앞면 광장에 서니 스텔스 전투기가 하늘을 바라보고 수직으로 서 있는 듯, 이것이 바로 트랜스포머인가!
- 70~77쪽 <세 가지 얼굴의 대성당> 참조
이어서 성 암브로시오 성당Basilica di S. Ambrogio에서 본 성 게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 안내문도 열한 해를 지난 지금 이 책을 보니 새 눈으로 다시 보였다. 역시 아는 만큼 본다.
밀라노에서 지은이가 마리우챠 할머니에게 들은 것처럼 착하고 적절한 가격의 에스프레소 커피와 암브로시오 성당 주랑과 마당의 기둥 생각에 한동안 잠겼다. 그리고 그때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가격과 상황의 커피란, 카드 결제 등의 흔적과 꼬리를 남기지 않고 에우로(유로) 동전 하나나 하나 반을 내며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커피caffe 한 잔에 굵은 황설탕 한 봉을 털어 넣고 한입에 잔을 털어 마시는 것이다. 지은이가 마리우차 할머니에게 현지 커피 맛을 쓴맛과 단맛, 불안과 희망, 슬픔과 웃음으로 배워 가는 것처럼 맛에는 까닭이 없다. 그때 그 상황의 주관적 느낌이 바로 내가 느끼는 맛이다. 남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를 맛. 그 자리 그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같은 느낌은 없을 것이다. 밀라노는 활기가 넘쳐 흐르는 창의의 도시였다.
- 199~207쪽 <세 사람을 위한 하나의 무덤> 참조
지은이는 밀라노를 떠나 거처를 옮기기 전 작은 성당을 찾았다. 그 성당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 현장을 목격하고 밀라노는 겉으로는 화려하나 깊숙한 내면에는 차갑고 신중한 신앙심을 간직한 곳이었다고 한다. 처음 왔을 때 온전하게 비워 둘 수밖에 없던 때가 기도의 시간이었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던 자리였다고 고백한다. 사진에서 성체 조배를 하는 수도자가 입은 흰 수도복을 보니 어느 수도회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이 세상의 참으로 거룩한 불침번이다.
- 259~260쪽 참조
옥에도 티가 있다면
4~6쪽 추천사, 지은이 얼굴 사진도 넣지 않은 책에 그것도 머리말 앞에 추천사란 명목으로 올라앉은 추천자의 사진과 글이 생뚱맞다. 요즘 누가 책을 보느냐지만 쏟아지는 출간물 홍수 시대에 추천사를 보고 고르지는 않는다. 출판사가 자기 책에 자신과 신념이 있다면 유명세에 편승할 이유가 있나? 고르는 사람 입장이라면 오히려 장황하고 화려한 칭찬 일색의 추천사가 많을수록 제쳐놓거나 관심 밖으로 밀어 놓는다. 진심으로 추천할 요량이라면 출간 후에 매체를 통해 서평이나 소개 글을 쓰던지 감상 글을 남기면 될 것을 굳이 책 머리 지면을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이 책을 예로 드는 것은 아니지만 추천자가 그렇고 그런 이라면 더욱 들춰보고 싶은 생각이 가실 것이다. 차라리 지은이나 엮은이가 후기를 붙이는 것이 낫겠다.
80쪽 그림, 성당 건물을 보여주는 사진인데 때마침 앞에 노면 전차(트람)가 지나가며 건물 반을 가렸다. 사진 출처 표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은이가 직접 찍은 사진인 듯하니 건물 전경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바꾸면 좋겠다.
사람 이름, 지은이가 천주교인이고 종교 출판사이니만큼 앞날개 뒷면 <글쓴이(지은이) 소개란>에 수도 이름이나 세례 이름을 병기倂記하면 좋겠다. 그렇다고 세례 이름이나 수도 이름을 소속 국가법에 따른 본명 뒤에 괄호를 쳐서 마지못해 부기附記하는 부적절한 행태는 바라지 않는다. 5쪽 <추천사>의 추천인 이름과 9쪽 <머리말>의 글쓴이 이름 표기도 마찬가지이다. 솔선수범을 바란다.
이런 이에게 추천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자뿐만 아니라 역사 안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유용하다. 여행 안내서로도 묵상집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유적지나 사적지 성지에서 혼자 일정 기간 조용히 머무르며 세상 안의 자신을 숙고하고자 하는 이, 교회 건축이나 미술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이가 본다면 더욱 좋겠다.
책 한 권 읽고 나서 문단 둘 고르기
“… 연 피정을 위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로마 남동쪽 알바노 호수Lago di Albano 근처에 있는 바오로수도회의 피정의 집 '카사 디빈 마에스트로Casa Divin Maestro'였습니다. … '카사 디빈 마에스트로'는 1959년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1967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를 위한 회의가 개최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함께한 친구 돈 시모네의 말로는, '저기 보이는 호수 건너편에 교황님들이 전통적으로 가시던 여름 휴양지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가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더 이상 가시지 않고 대신 이 수도원에서 매년 피정을 하신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
피정의 집으로 돌아온 저는, 복도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로 앉으셨던 성당 좌석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행복이나 기적을 빌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황님이 기도하며 보셨을 그 시선으로 제대와 성당 십자가를 보고 싶었습니다. 단지 가난에 대한 지향만으로 교황님의 새로운 선택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 236~241쪽 <교황님의 휴가> 중 -
"밀라노를 떠나기 전 저의 발걸음은, 시내의 조그만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별도의 성인 유해나 기적이 일어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하고 거대한 밀라노 대성당과 세계적인 쇼핑몰이 화려하게 들어선 도시의 중심가에서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조용히 서 있는 성 라파엘 성당Chiesa di San Raffaele. 그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발소리 숨소리 하나에 촛불 끝이 흔들릴 만큼 꽉 찬 침묵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대 위에 예수님의 성체를 모신 성광이 자리하고, 훌쩍이는 콧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밤낮없이 수녀님의 지속적인 성체 조배가 이뤄지는 자리. 그래요, 도시 밀라노는 겉으로 화려하다 할지 몰라도 그들의 내밀한 자리에서는 성 라파엘 성당처럼 차갑고 신중한 신앙심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 259~260쪽 <밀라노에게 보내는 편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