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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미셸 우엘벡과 첫 만남은 아찔했다.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추천해주셔서 도서관에 있던 <소립자>를 읽었다. 혀를 내둘르며 덮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런 게 프랑스 문학이란 말이가. 변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애 장면은 노골적이었다. 요새 말로 '후방주의'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어야 할 책이었다. 혹, 이 책을 읽었던 누가 지하철에서 <소립자>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미셸 우엘벡하면 손을 내저었다. 다신 읽지 않으리라!
그러다 올해 초, 미셸 우엘벡의 문제적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책장에 꽂아두었던 <지도와 영토>를 펼쳤다. 신작을 읽기 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자는 생각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지도와 영토>는 <소립자>와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미셸 우엘벡은 이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또 철학에도 조예가 깊다니. 충격적이었다. 여전히 성애장면은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지도와 영토> 속 미셸 우엘벡은 그저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괴팍한 노인네이자 지적임으로 충만한 예술가였다. 거기다가 간간이 블랙유머까지.
세번째 만남은 이번 신작, <복종>이다. 올해 초 세상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시끄러웠다.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문제가 대두되면서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이 책도 유럽 전역을 휩쓸다시피 했다. 2015년 7월, 한국에도 <복종>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이 되었고, 그렇게 미셸 우엘벡과 세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역시, 백과사전 같은 우엘벡 만의 서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이 불문학 교수라는 설정 덕분에 프랑스의 유명 시인에 대한 서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또 여전히 문학에 대한 우엘벡 만의 철학도 등장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책은, 무엇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우리가 만나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작가의 책이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가지가 독서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우엘벡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은 현실적이다. 그럴싸하다. 서서히 사회는 무슬림에게 잠식당한다. 어느 순간, 확 바뀐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서서히 물들어간다. 그러다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성의 상징은 대학들마저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자들은 히잡을 둘러쓰게 되고, 집안에만 묶이게 된다. 그러면서 남성들 취업률이 높아지게 되고 사회는 어딘가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일부다처제가 들어오면서 남자들은 원래 함께 살던 부인에, 새로 얻게된 어린 부인까지,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성을 이끌어 가던 대학의 교수들마저 연봉이 높아진다는 소리에, 교수직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에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부인을 두셋 거느리게 된다. 결국 차가운 시선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주인공인 프랑수아 마저 '복종'하고만다.
작품은 이슬람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온건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적 갈등이 해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은연중에 잠식해 있던 유럽 사회에서 이 소설이 더 논란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섬뜩한 소설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럽보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권을 다른 문화권이 장악했다고 생각해보라. 좀더 격하게 상상해보자면 (그럴 리 없겠지만) 북한의 정권이 우리 사회를 장악했다고... 생각해보면 <복종>이란 작품이 더 섬뜩하게 와닿을 수도 있다. 결국 타 정권에 무릎을 꿇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
조금은 이런 식으로 몇 년 전에 내 아버지가 혜택을 입었듯,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삶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두번째 삶의 기회가 되리라.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 2022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현대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견된다. 빅브라더를 사랑한다는 1984와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는 <복종>. 시니컬한 미셸 우엘벡은 나에게, 또 우리에게 아주 묵직한 펀치를 던지며 <복종>을 마무리지었다. 그에게 제대로 한방 맞은 나는 어느새 미셸 우엘벡과 네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