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라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마르면 마를수록 기뻤다. 튀어나온 뼈를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황홀해했다. 창백한 안색도, 텅 빈 눈이 어울리는 생기 없는 얼굴도 전부 기뻤다. 그가 찍고 싶어하는 건 뼈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인간이 감정과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모습 그 자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 사진 작가의 작품집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모델 사키. 애인인 사진 작가의 집에서 함께 살지만 그와 사귄다고도 말도 못하는 신세다. 애인은 사키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지도 않고, 애정 담긴 눈빛으로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욕구를 배설하는 변기처럼 성욕만 채우고 만다. 그에게 애정을 키우던 사키는 거식증을 앓는다. 음식을 잔뜩 사다가 씹고 뱉는 일상. 사키 자신도 괴롭지만 그가 다른 모델을 찍는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 밴드의 보컬을 소개받는다. 마쓰키라는 그 보컬은 사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를 있는 그래도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쓰키와 그녀를 변기처럼 취급하는 사진 작가 사이에서 사키는 괴로워한다.



나는 울었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내게 가르쳐준다. 이 세상에 구원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 골으로 그와 내가 연결된다는 것을.

위험한 사랑 중독에 빠진 젊은 여성을 담은 이 작품은, 작가가 집필중 곡기를 끊어 통원치료를 했다고 밝힐 정도로 목숨을 바쳐 집필한 것이다. 구원의 손을 잡았다가도 스스로 그 손을 놓는 여성의 모습은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 이미 변기의 삶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광기의 애증. 머리를 잘라내도 끊임없이 머리가 자라나 끝내 죽지 않는 히드라라는 괴물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식과 스스로를 내던지는 고통.


스스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 같은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거식을 하면서, 자신을 숨기고 상대가 사랑할 만한 모습을 연기하며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가.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충분히 두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가네하라 히토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고통스런 질문을 던지며 이 작품을 끝맺는다.



뱃속에 음식물이 들어 있는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죄악감은 내 안에서 꿈틀댔다. 나는 죄악감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자신을 망치고 있다는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자기 파괴를 멈출 수 없는 사키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이드라>에서는 '거식'이라는 극단적인 파괴방식이 등장했지만 우리도 작게나마 자기 파괴적 행위를 할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상대에게 하는 사소한 거짓말도 자신의 정직을 파괴하는 방식이니. 삶을 사는 내내 우리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해도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줄 것인가?'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닌데,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이 사람이 떠나지 않을까?' 하지만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만큼 그릇이 큰 사람임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내 쪽에서 떠나는 것이 맞다. <하이드라>의 사키는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다. 자기애를 키워서 내 안목을 믿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 사랑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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