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지키는 아이
마야 룬데 지음, 리사 아이사토 그림, 손화수 옮김 / 라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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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아직도 코끝과 양볼에 내리죄는 햇살을 느낄 수 있다. 그 간질간질한 따스함이 가슴속까지 스며 들어오면 심장이 녹아내릴 듯 평온해지면서 온몸에 활기와 자신감이 감돈다. 내가 기억하는 햇살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살 되던 때, 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007

;나의 세상은 늘 어둡고 축축하다. 매일매일 비가 오고 구름이 낀 날이 이어지지만, 천둥이나 번개가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날 만약 할아버지가 도시락을 가져갔더라면,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의 온실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나의 세상은 아직도 영원한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008

태양이 사라진 영원한 어둠 속에 사는 소녀 릴리아. 봄,여름,가을,겨울도 없고 심지어 낮과 밤도 없는 곳, 초저녁의 어스레한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에 살아요. 사라진 태양을 지킨다는 기발한 설정이 재미있기도 하고, 지금의 기후 위기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서늘한 느낌도 들었어요. [태양을 지키는 아이(마야 룬데 지음, 리사 아이사토 그림 / 라임출판사)]의 첫 장을 읽는데 궁금함으로 간질간질해져서 휘리릭 읽어 버렸네요

태양이 사라진 세상 속 릴리아는 해를 사랑하는 키 큰 백합꽃에서 온 이름이에요. 무채색의 삶 속에서 아빠의 물감통, 엄마의 식물도감에서나 선명하고 강렬한 색들을 볼 수 있지요. 호기심 많은 소녀는 할아버지의 숨겨진 온실로 향하는데요. 유일하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나오는 그 곳은, 밖의 상황과 다르지 않아요. 빛바랜 녹색을 머금은 연약한 줄기와 여린 열매만 있는 그곳에서 릴리아는 온실의식물들에 대해서,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못하고 나와요. 할아버지가 온실로 일하러 가는 모습을 멀리서 쫓아가요. 비밀의 문을 발견한 릴리아 그 속에서 햇살의 축복을 만끽하게 되는데요.

글 속에 떨어져 있는 빵 조각을 쫓아가며, 결국 비밀이 밝혀 졌을 때의 그 쾌감이 좋아요. 다시 하나씩 이야기를 되짚어 가보니, 빵 조각이 제법 많았어요. 뒷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네요. 책의 장르는 '환상소설'인데요.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하고 외치고 싶은 그 마음, 꾸욱 참을께요 ㅎㅎ (TMI 식스센스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가 1999년이네요. 친절한 스포일러 덕분에 영화의 참 재미를 놓쳤던 그 때가 생각나네요.)

하드커버의 표지부터 짙은 초록이 독특하고 신비로워요. 처음에는 사각형 속 릴리아의 뒷모습만 눈에 띄었는데,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초록색으로 표현된 다른 캐릭터들에도 눈이 가네요. 리사 아이사토의 그림 속에서 인물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표현되요. 아름다운 봄을 회상하는 할아버지, 떨어진 배를 손 위에 올린 릴리아, 햇살의 축복아래 행복한 소년,,, 그 속에 표현된 모든 인물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꿈], [책을 살리고 싶은 소녀], [스노우 시스터]에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예요.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림들이 덕분에 언어는 더 풍부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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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들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릴리아를 보며, 나를 둘러싼 것들을 다시 돌아 보았어요. 매일의 일상이 갑자기 특별해지는 기분이네요. 창가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어요. 아이들은 햇살이 눈부시다며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렸네요. 그 틈새로 햇발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어요. 책상 위에 올려진 진혁이의 선물, 마가레트 봉지가 반짝반짝이네요.

오늘 5월에 전학간 진혁이가 깜짝 방문을 했어요. 수업 시간에 똑똑똑 앞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진혁이가 들어왔지요. 교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진혁이는 서글서글한 웃음이 한 가득이에요. 간식까지 들고 왔다고 하니, 난리가 났어요. 잠깐의 만남 뒤 진혁이는 '다음에 또 올게' 라고 한마디 남기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 갔어요. 우리가 함께한 3,4,5월을 여전히 기억하는 진혁이의 마음이 고마워요. 혼자 눈에서 물이 나올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았네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따뜻한 마음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도 오늘처럼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헬맷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혼자 걱정이네요.

그동안 일상에서 누려왔던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지속해도 되는 걸까요. 이상 기후로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유례없는 폭염, 잦은 가뭄과 홍수, 팬데믹 등등 기후위기가 심해지니 저보다는 아이들의 삶이 더욱 걱정스러운 요즘이에요.

책을 읽으며 제 가슴 속에도 '햇살 가득한 봄'이 작게 자리잡아요. 저는 오늘도 소심한 환경주의자로 살기 위해 노력 하나 보태봐요. 한사람 한사람이 릴리아와 소년이 되어 우리의 삶을, 지구를 지켜갈 수 있기를요. 푸른 잔디와 신선한 흙냄새가 함께하는 봄을 계속 누릴 수 있기를요. 우리의 삶도 희망에 더 가까워 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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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는 봄을 꼭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봄! 021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봄! 나는 봄을 꼭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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