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기위해 노력하고 싶기에, 오늘도 청춘을 말한다. 감정을 포착하는 인위적인 촉감 대신 아늑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웃을 수 있다. 당신과 나의 관계 속에서 세계는 시작되었고, 그 세계의 끝에서 나는 부쳐지지 않는 누군가의 편지에 작지만 믿음을 걸어 본다. 모든 관계는 그 고독 만큼이나 유효하기에, 우리는 서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그 어떤 설명보다, 청춘과 인생에서 느끼는 행위의 한계를 이야기 하는 작가 김연수의 단편소설 한부분을 발췌해서 이토록 추운 겨울을 잠시 데워보려 한다. 그 날씨의 따뜻함과 그대의 온기로.

나는 생각해 봤다. 그랬어요. 십 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봤다.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있는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시인과 여자친구는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사람은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거리에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게 됬다. 다시 수만 년이 흐르면서, 빙하기를 지나면서 여러 나무들이 멸절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는 살아남을지도 모르고, 그 나무는 한 연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희선씨에게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그렇게요."

 <세계의 끝 여자친구-세계의 끝 여자친구,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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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대선이 끝났다. 늘 그렇듯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후보의 양자대결로 후보자 점쳐졌고 그 가운데에는 중도 유권자를 상당 수 점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한 후보도 있었다. 결국은 이래저래 그 명사의 긍정적 측면이 살짝 뒤틀린 단일화가 있었고, 역시나 그렇듯 양자대결로 대선을 이루어 졌다. 그리고 끝났다. 75%가 넘는 투표율에 과반지지를 받은 보수진영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진보정당들은 앞으로 5년간의 정권에서 청와대를 내주었다는데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고, 몇일 뒤 예정된 순리처럼 각종 책임론과 사퇴론이 당내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유난히 돋보이는 현상이 진보진영에서 드러났다. 이번선거에서 보수적 후보자의 독특한 배경(가족관계, 국가통수권자로서의 역량등)들을 뒷전으로 넘겨두더라도, 결과에 상응하는 일부 진보 유권자 사이에서 윤리와 도덕적 메카니즘이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상대방 진영에 대해 정치적 이념의 차이가 아닌, 한 개인으로써의 도덕적 판단의 잣대가 동원되는 것이다. '나는 정의로운데'라는 자기 확신이 깃든 타인의 이념을 바라보는 '도덕적인 치명적 결함'이 상대 측 정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에 대한 철저한 이해의 불가능을 촉발하게 만든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이분법의 형태로 갈라지고, 색채는 자연스레 '흑과 백' 두색깔로 뚜렷하게 나눠졌다. 서로의 이상을 구현하기에 다른 이념들은 윤리적으로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극 소수 진보진영의 목소리는 더 외각으로 편입되었다.


좀 더 내밀한 설명없이 표면적으로 현상의 문제를 드러냈지만, 이 문제는 우리 현 시대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이념들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한계를 얘기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국가 안보통일 차원의 얘기를 말하면서 예전부터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 한쪽에서는 극단적으로 북한체제의 비관적인 확고함이 깃들어져 있었고(대다수 세대들이 교육받는), 그나마 한쪽에서는 평화적 실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일부 불편한 이념이 꿈틀대면 다시금 극단의 색깔이 들춰져 나와 결기의 잣대로 비난이 쏟아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마치 그 모습은, 누군가 문제시 되는 사상을 입밖으로 꺼내는지 이를갈며 바라보는 듯 하기도 하다. 


 북한 체제의 한계로 곧 붕괴 될거란 흡수논리와 더불어 통일 비용의 문제, 국가적 가치관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통일문제가 논제로 올라와 실질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 비용과 체제의 한계들을 담론하기 전에 우리 내부의 닫힌 자세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 사회집단과 정치세력간의 이념 차이들을 충분히 조율하고, 소수의 의견들까지 공론의 장에 올려 귀를 기울이는 자세. 서로의 귀를 닫아 놓거나, 실질적으로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용납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의 한계를 윤리적 당위로 강하게 정해 놓는 실상에서 그 어떤 실질적인 통일문제도 현실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내부에 세워져 삭막하게 사회를 가르고 있는 장벽을 무시한 채, 더 큰 장벽을 평화적으로 혹은 다른 식으로든 해소하려 든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고, 이해되서도 안된다. -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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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참 애매모호 한게 많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방송되는 뉴스들을 봐도 그렇다. 본질적인 내막과 배경을 알지 못한채 내뱉는 정보들을 '어느정도 사태의 심각성'만을 각인한채 망각해 버리는 것 처럼 말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테러들이, 생각해보니 내가 구내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을때 일어났다는 짤막한 뉴스나, 이후 후식으로 커피숍에 가는 길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이 일어난 일들과 같은 것들이 말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서 매일 새로운 정보들을 폭풍처럼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모호하다. 내용은 신속성을 중요시 하는 뉴스의 간결함과 작은 모바일 액정에 걸맞는 프레임에 담겨 좁혀지고, 중요성은 축소되며, 심지어 간혹 왜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대중들은 모호한 실루엣 속에서, 정보의 실질적인 형태와 왜곡되지 않은 사건들의 배경을 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본질을 향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이 글을 타이핑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을 사소하지만 하나의 사건이라 기록하면, 객관적인 상황이 벌어짐과 동시에 다른 관점들의 셀 수도 없는 주관들이 개입하게 된다. 애초에 객관이라는 본질은 손질되고 일어나게 된 계기, 진행되는 과정, 발하게 된 결과, 그로써 이 사건이 남긴 의의들 까지 전부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평가 될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밀첩하게 안고살게 되는 극단의 주관인 '시간'이 개입하면서, 개개인 모두의 탄생은 주관의 탄생이며, 생生은 주관의 과정이 된다. 이 주관들 속에서 한 시대(역사)의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이라는 피상적인 모호한 접근보다는 '보다 다양한 주관을 수용한' 역사서로 이 멈추지 않는 역사서를 접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의 다양한 정당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이념으로 박치기 할때 가장 예민하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교과서이다. 어린 아이들이 처음으로 역사를 인식하게 되는 시발점. 어떤 사안에 대하여 무의식 적으로(의식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지게 된 극단적인 이미지, 예컨데 부정적인 이미지와 배경을 가지게 되었다고 치자. 그 이미지를 깨고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뒤엎는 다른 방식의 이미지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작용을 하거나, 혹은 자의적으로 다른 작용들에 대한 탐색 노력을 시행 할 직접적인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처음 접하게 되는 것들이 인생에서 이미지로 각인되어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잠시만 돌아보아도, 분명한 논리와 지식을 뒷받침 하지 못한채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미지 들이 얼마나 많은가. 때문에 같은 공간을 다른 이념을 가지고 해석하는 세력들 간의 논쟁은 여전하고, 일본의 역사왜곡, 수없이 많은 과거사 논란들은 여전히 미디어에서 끊이지 않고 공론되는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하지만 정보는 수없이 마구 쏟아지는데 비해, 현 세대는 제대로 역사(본질과 배경)을 습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 수없이 마구 쏟아져 안구속으로 들여보내지는 것이다. 깔때기는 부족한데 물만 자꾸 쏟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는 깔대기를 넓히자는 수용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안에 이미 산처럼 쌓여있는 정보의 더미들을 가장 밑바닥 부터 긁어내 제대로 뒤집어 바라보는 것. 모호한 것들을 열린 주관으로부터 바라보는 것.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념들을 수용하면서, 혹여나 나도 모르게 딱지처럼 들러붙은 이미지들을 관철하는 행위가 바로 제대로된 역사 인식이 아닌가 싶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단편적인 정보의 산들을 수평으로 잘라내어, 그 역사가 의의하는 본질부터 보려는 그 마음가짐. 바로 거기서 부터 '지식인'은 탄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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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기만 했을 뿐 읽은 책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많이 틀리고, 부족하겠지만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기존에 읽었던, 그리고 최근에 구매해서 읽게된 소설과 인문관련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약간의 공감이라도 있었다면 추천 하나 부탁드릴께요^ㅡ^.  -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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