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렸고 많은 부분에 밑줄이 쳐 있고 메모가 남겨있었다. 동물과 다른 인간에 대한 설명이 이리도 예리하고 지적일 수 있다니. 저자가 유명 철학자나 과학자를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방식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계속 어떤 부분은 읽게 만들고, 어떤 부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이건 꼭 설명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체득한 사실인데 이렇게 장황하게? 혹은 이론적인 서사를 덧붙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삼 학자들의 정교한 인식구조와 말과 지성으로 풀어내는 인간의 속성들로 재미있었다. 인간의 고유성을 가진 본질. 혹은 속성이라. 도덕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다른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반복해서 읽었더니 이해는 갔다.
이 책은 과학이 인간의 속성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 과학으로 증명되는 생물학적 인간의 이해에서 반대적인 입장을 조목조목 다양한 근거를 통해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과학이 설명해 주지 못하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고유 속성들인 인간성, 인간의 웃음, 인격, 지향성, 주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기적 유전자"이론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할 때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과는 별개라고 말한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나 그 질문과는 별개로 인간의 고유 특징인 인격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웃음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만이 웃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고 인간의 삶에서 나오는 잉여스러운 부산물일 수 있다고 한다. 웃음으로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 신선했다. 생물학적 인간은 인정하지만 우리의 웃음과 울음은 유전학적인 측면에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웃음은 인간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고도 한다. 함께 웃는 것은 인간에게 유용함을 주기도 하고 웃음 없는 청교도들은 그들의 생존에는 웃음 없이 건조한 그들의 정신이 훨씬 유익했을 거라 말한다.
인간의 속성은 책임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니체는 인간의 본성인 포식자에 의한 노예 상태에 놓여있는 감정을 '르상티망'이라고 하면서 기독교의 신학과 도덕관념 전체에 대한 설명을 르상티망으로부터 이끌어 낸다.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가해지는 고통과 처벌로서 가해지는 고통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처벌은 도덕적 개념이고 마치 사육사가 가하는 고통은 필요함이고 처벌을 가하는 자는 그 고통이 적합하다고 본다는 데서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벌로서 청소를 하는 것과, 당연히 해야 할 과정으로 청소를 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아퀴나스, 로크, 칸트는 우리가 속한 부류의 진정한 이름은 인간 human being 이 아니라 인격 person이라 주장한다고 한다.
정신의 영역을 생물학적인 설명으로 전부 이해가 안 되듯이 인간 본성은 과학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음을 이 책에서는 거듭 말하고 있다.
인간은 뭔가를 지향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인격이란 생물학적인 것에 부가되어 있는 무언가가 아니고 생물학적인 것으로부터 창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격이 있고 주체성이 있다는 점이 구별된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과학이 아니라 정신과학의 소관으로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나-너 만남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나는 상대가 유기체, 인격체로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나를 "너"라고 호명함으로써 상대는 인격체로서의 나를 불러내어 "나"로서 대답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97쪽
이 부분에서 진실이란 결국 나를 보여주면 너도 너를 보여주는 식이란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인간의 나와 너를 규정짓는 것은 각자의 주체이지만, 친밀하고 진실한 관계를 위해서는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너를 인식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너를 보여주라는 뜻 같다. 조금 다른 뜻일지 몰라도 나-너 인식은 도덕 시간에 많이 들었던 역지사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교차지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타인이 없이는 자아도 도덕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2인칭이 될 수 있을 때 인간 조건에서 중요한 것들인 책임, 도덕성, 법, 제도, 종교, 사랑,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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