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의 수토 기행 - 나를 충전하는 명당을 찾아서
안영배 지음 / 덕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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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남윤(南倫)·감찰(監察) 김종직(金宗直) 등이 윤대(輪對)하였는데, 김종직이 아뢰기를,

"지금 문신(文臣)으로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율려(律呂)·의약(醫藥)·복서(卜筮)·시사(詩史)의 7학(學)을 나누어 닦게 하는데, 그러나 시사(詩史)는 본래 유자(儒者)의 일이지만, 그 나머지 잡학(雜學)이야 어찌 유자(儒子)들이 마땅히 힘써 배울 학(學)이겠습니까? 또 잡학(雜學)은 각각 업(業)으로 하는 자가 있으니, 만약 권징(勸懲)하는 법(法)을 엄하게 세우고 다시 교양을 더한다면 자연히 모두 정통(精通)할 것인데, 그 능통(能通)하는 데에 반드시 문신이라야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제학(諸學)을 하는 자들이 모두 용렬(庸劣)한 무리인지라 마음을 오로지하여 뜻을 이루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너희들로 하여금 이것을 배우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비루(鄙陋)한 일이라 하나 나도 또한 거칠게나마 일찍이 섭렵(涉獵)하면서 그 문호(門戶)에 며칠 동안 있었다.“

세조실록 1464년 8월 6일의 이 기사는 세조가 신하들에게 잡학을 배우게 하자, 천문, 지리, 음양 등은 각자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이를 기피한 유명한 기사이다. 이 기사만 봤을 때 김종직 등 조선시대 유자들은 잡학을 기피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종이나 세조 등 왕들도 잡학을 배웠고, 관학에서 유학은 물론 지리, 천문, 음양 등도 국가정책에 필요했기에 인재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이이(李珥)처럼 잡학이 아니라 조선에서 허학으로 배척하던 불교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환속을 하면 과거를 볼 수 있었고, 학문을 쌓으면 대학자로 추앙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신숙주(申叔舟)는 외국어(역학)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이라는 책을 번역하였고, 박연(朴堧)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정약용(丁若鏞)은 의학에 능통하여 마과회통(麻科會通)을 편찬하기도 했다.


안영배의 [수토기행] 이 책은 조의제문(弔義帝文) 등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김종직을 지리(풍수)와 관련하여 연구한 책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대학원 파견 시절 지리, 천문, 역수 등으로 구성된 음양학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때 조선시대 풍수가 당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알았지만, 김종직은 정말 의외였다.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 중 한 사람인 김종직이 이런 말을 했다니? 저자는 물론 본인도 충격을 받았다. 위의 세조실록의 기사만 보면 유학 외에 다른 학문은 배척했을 것 같던, 김종직은 의외로 다른 종교와 여러 학문도 넓은 식견을 가졌으며,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김종직으로 시작한 여행은 신라시대 최치원 등 고대 신선들이 머문 곳을 거쳐 고려, 조선시대 수토 기행과 저자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보천가 등의 천문학이나, 원천강 등의 명과학은 모두 중국에서 출판한 책이다. 그러나 안영배의 이 책은 다른 곳이 아닌, 우리 선조들이 예로부터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중심으로 직접 발로 다니면서 썼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헌도 대부분 우리 선현의 자취이며, 후한의 채옹 등 중국학자들의 글도 우리와 관련된 글이다. 지금 우리 땅에서 마음의 근심을 덜어내고, 좋은 기운을 받아 심신을 충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자신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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