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투 제로 - 걸프전쟁에서 싸운 영국 특수부대 정찰대의 처절한 참전 실화!
앤디 맥냅 지음, 이동훈 옮김, 김창모 감수 / 책미래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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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람보와 코만도 등을 보면 특수부대의 활약은 놀랍다. 혼자서도 손쉽게 적을 무찌르고, 무수히 많은 위험을 헤쳐내고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낸다. 그러나 현실의 특수부대도 그럴까? 순수 창작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 중에서 걸작으로 불리는 새벽의 7인을 보면 그들은 하이드리히의 암살에는 성공하나, 단 한 명도 무사히 귀환하지 못한다. 최후의 2인은 성당 지하에서 생포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700만을 동원한 인천상륙작전 그들도 업무는 완수하나,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했다. 실제로 휴전 이후 국내에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들을 살펴보자, 청와대 폭파 등 침투 목적을 달성하고 제대로 돌아간 공비들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1996년 강릉에서 좌초된 잠수함에서 탈출한 공비들은 49일 동안 도주 행각을 벌였으나, 결국에는 전원 소탕되었다. 처음에는 김영일은 도주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북한 TV에서 그동안 체포하지 못했던 그의 이름이 강릉자폭자 명단에 있는 것이 확인되기에 도주 중에 죽은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강릉 무장 공비들은 도대체 어떻게 49일 동안 우리 군의 포위망을 피해서 도주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그들이 직접 남긴 기록 즉 수첩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먼저 공비들은 보통의 생각처럼 밤에 이동하고 낮에 숨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극심한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의 가을 산에는 도토리 등이 넘쳐나고, 90년대에는 이미 굶주리는 국민이 없었기에 민가에서 쉽게 식량을 탈취할 수 있었다. 오히려 경계 근무 중이라 함부로 자리를 이탈할 수 없는 우리 장병들이 갈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공비들이 남긴 수첩은 그들의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우리 군에서 테러를 대비하는 자료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특수부대원들이 직접 남긴 기록은 없을까?

걸프 전에서 싸운 영국 특수부대원들의 참전 기록이 90년대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브라보 투 제로]이다. 9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2015년에는 밀리터리 전문 번역가 이동훈이 번역한 책이 책미래를 통해서 국내에 출판되었다. 영국군 특수부대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달랐기에 현지인(이라크인)과 쉽게 구분되었다. 그러나 강릉에 침투한 공비들은 같은 민족에, 언어도 같기에 피아 식별이 힘들었다. 한 예로 경계 검문에서 암구호를 대지 못했으나 군국 장병이 송이를 캐러 온 주민(실제 작전 현장에 가끔 나타났다고 함)으로 생각했기에 군 장병을 살해한 후 도주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국민 사이에도 이런 행위의 위험성이 심각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브라보 투 제로는 내가 아는 참전 특수부대 대원들이 남긴 유일한 수기다. 그들의 생생한, 수기는 특수부대원들의 훈련 방법과 작전 내용은 물론, 극한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이라크 열사 즉 뜨거운 사막이라고 생각했으나, 당시에는 30년 만의 강추위가 찾아와서, 경유가 얼 정도로 추웠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특수부대원들은 어떤 방법을 취했을까? 극한 추위에 다다르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표지판도 없는 사막에서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영국의 특수부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도록 훈련했을까? 책의 이런 내용들은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북한은 휴전 후 수많은 도발을 했으며, 강릉에 침투한 공비들이 전원 소탕되었지만, 98년에 또 잠수정으로 침투하다, 전멸되었다. 즉 북괴는 아직도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언제 다시 공비를 침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불행히 이라크군의 포로가 된 것도, 한 목동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릉에서 생포된 공비도 현지 주민의 신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특수부대원들이 잡히면 받는 고문에 대해서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강릉에 침투한 공비들도 전투력이 없는 대원들은 즉결 처형하고 도주했다. 이들이 잡히면 누설할 정보를 막기 위함이었다. 영국군들은 어떻게 그 고문을 견디면서 단 한 명도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고문이 계속되는 한 아직 아무도 누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소중한 정보를 자신도 모르게 누설하지 않았는가? 강릉 무장 공비들은 국내 방송을 청취하면서 군의 배치를 파악했다고 한다. 당시 뉴스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정보를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쉽게 흘리는 것은 아닌가? 방송국의 의식은 그때보다 높아졌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유튜버와 채팅이 심히 걱정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카톡이나 유튜버를 통해서 보게 된 적은 없었는가?

군인에게는 작전과 상황 발생 시 대처 방법이, 국민에게는 필요한 안보 의식이 이런 수기에 들어 있다. 우리 군이 앞으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북의 도발은 분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이런 수기들이 꾸준히 연구되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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