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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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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대중들의 삶 속에서 충신의 대명사로 남아 있는 사육신. 그들은 김질의 고변으로 세조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할 때도 시종일관 당당함을 잃지 않았으며, 세조를 나으리로 불렀다고 한다. 특히 박팽년은 세조가 아껴서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고만 한다면 살려 준다고 했으나, 그는 거부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는 실제 역사가 아닌 소설 속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의 기록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세조실록 2년 6월 2일(1456)의 기록은 살펴보자.
성상문 : "진실로 상교(上敎)와 같습니다. 신은 벌써 대죄(大罪)를 범하였으니, 어찌 감히 숨김이 있겠습니까? 신은 실상 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과 같이 공모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들뿐만이 아닐 것이니, 네가 모조리 말함이 옳을 것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유응부(兪應孚)와 박쟁(朴崝)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박팽년 : 박팽년에게 곤장을 쳐서 당여(黨與)를 물으니, 박팽년이 대답하기를,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박쟁(朴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신의 아비였습니다."하였다.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하였다. 그 시행하려던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고문에 시종일관 당당했다던 성상문은 세조가 죄의 경중을 말하자, 술술 불기 시작하며, 소설 속에 가장 당당했던 박팽년은 소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가장 많은 인원을 말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까지도 불어버린다. 그리고 별운검을 통한 거사계획도 그의 입을 통해서 밝혀진다. 우리가 아는 소설 육신전은 저자 남효온이 3살 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몇십 년이 지난 후 지은 책이고,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관 등의 기록이다. 어느 기록이 더 신뢰성이 높을까? 이처럼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던 사실과 실제 역사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2차 대전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가 보편적으로 아는 2차 대전의 모습은 파울 카렐이 엮은 책의 내용이라고 한다. 그의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80~90년대 일본 서적의 해적판과 이를 표절한 책이 범람하던 시기에 우리에게도 알려서 마치 역사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오키 다케시(박삼헌 역)의 독소전쟁은 독일 문서관 등의 사료를 통해서 우리가 알던 통념과 실제 역사 속의 사실을 분석했다. 한 예를 들어보면 그동안 우리가 2차 대전 당시의 지상 최대의 전차전으로 알고 있었던, 치타텔리 작전 속의 프로호로프카의 전차전은 허구다. 당시 그곳에는 가장 많은 전차가 있었을 때가 44량 정도였다. 이러한 허구성이 폭로된 이후 서양 학계에서는 칼레의 저서는 이제 더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카렐의 책이 남효온의 육신전과 같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책이라면, 독일 문서관 등의 자료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학생 때 알던 2차 대전의 모습이 지금은 허구라고 밝혀진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 출발점이 바로 카렐의 저서였다. 그리고 전쟁 당시의 독일인이 아니라 전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쓴 글을 마치 당시의 교범과 작전처럼 인용한 사례도 있었다. 이 책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 속에서 일반인이 읽는 책과 전문가들이 학술적으로 읽는 자료를 접목하려고 시도했다. 독일 장성들이 모두 반대할 때 히틀러 혼자서 소련 침공을 주장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일본의 진주만 침공에 몇천 년 동안 전쟁에 한 번도 지지 않은 나라와 같이 싸우게 되었다고 들떠서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독일군 장성들도 소련 침공에 열광적으로 환호했으며, 영국을 침공할 당시 독일 내부에서도 이미 미국과의 결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차 대전은 독일과 소련 외에도 많은 나라가 휩쓸렸지만 가장 참혹했고, 거대한 전장은 바로독일과 소련의 전쟁이었다. 그 전장을 소설과 같은 자료가 아닌 학술적 자료를 곁들어서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