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ㅣ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0월
평점 :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홍희범) 모던아카이브
전쟁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열한 전투에 열광한다. 군사학에서는 2차 대전의 전격전과 낫질작전, 종심방어 등의 전술이 주요 연구주제이며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진주만 공습 등의 주요 전투가 영화의 배경이 된다. 그러나 전쟁사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전후의 세계이다. 1차 대전하면 참호전과 가스전이 유명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이때 같이 공중분해 되었다.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해진 1945년 2월부터 연합군 수뇌부들이 모여서 전후의 세계를 논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결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6개월의 결과로 동서 냉전의 서막이 열렸으며, 전후 새로운 세상이 결정되었다. 이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으며,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그 6개월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41년 12월 7일 평화로운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일본 항모에서 발진한 비행기들의 기습 공격이 있었다. 이후 미국은 나치 독일과 일본 두 세력과 양면에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미국은 결국 양쪽 모두에서 승기를 잡았으며, 1945년에는 승리가 거의 확실해졌다. 1945년 2월 3일 미국의 루스벨트는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 땅에 발을 디뎠다. 그는 700명이 수행원들과 함께 크림반도에서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소련은 그때까지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군사동맹국이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용감한 전사로 그려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1944년 말까지 274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인력손실은 전사자와 실종자만 합쳐도 800만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다른 전선 아프리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은 약 55만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고, 미국은 41만 6000명, 영국은 38만 3000명의 전사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이처럼 독일군의 내장을 찢는 주역은 소련군이었고, 미국은 자국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소련을 대일전에 참전시키고 싶었다.
1941년 독소전쟁 개전 후 스탈린은 4개월 만에 모스코바 바로 코앞까지 몰렸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는 반격을 시작해 스탈린그라드에서 전쟁의 반환점을 찍었고, 쿠르스크에서는 확실히 승기를 잡게 되었다. 미국의 지도자와 달리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게 자국의 사상자의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승기가 확실해진 1945년 1.12 ~ 2.4월 동안만 해도 무려 30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스탈린에게는 오직 목표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인 자리에서 미국의 루즈벨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소련을 추켜세우고, 다른 연합국을 은근히 헐뜯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약소국들의 입장이 철저히 무시되었고, 전후 새로운 국경선과 세계판도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스탈린은 불과 3~4년 전에는 자국의 존망을 걱정하는 입장에서 이제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모두 자국의 희생을 줄이고자 한 루즈벨트와 오직 목표만이 중요했던 스탈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원폭 때문에 항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었다. 일본은 소련이 만주로 진군하자 독일처럼 국토가 둘로 나뉘는 것을 걱정했다. 즉 분단이 되기 전에 항복한 것이다. 스탈린은 만주로 진공해서 러일전쟁 때 잃어버린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되찾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반도에도 군대를 진주해 38도선 이북을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두었다.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가 자국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소련의 대일참전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소련은 얄타에서 벌어진 이 회담을 통해서 유럽에는 철의 장막을 쳤고, 독일에 협력한 소련군 포로들을 반환시켜서 끝가지 죄를 추궁했다. 스탈린은 이미 그때 전쟁의 승리는 물론 전후의 세계까지 이미 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국으로 돌아온 소련군 포로들의 앞날은 결코 밝지 못했다. 특히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할 정도였다. 스탈인은 전후에도 복구를 위해서 인력을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본보기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그들을 응징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에 도착하자마자 즉결처분을 받았다. 원자폭탄도 잔인했지만 스탈린은 더욱 잔인했다. 그는 그 잔임함을 바탕으로 전후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은 전후 동서냉전시대에 벌어진 스파이 전쟁은 이미 얄타회담에서부터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장관 보좌관이었던 앨저(알저) 히스가 바로 소련 측의 스파이였던 것이다. 그 후 3국이 만났던 다리는 전후 양측의 스파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동서냉전이 끝난 지금에도 양측의 첩보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가 모르게 이러한 회담이 계속 되고 있지 않을까?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홍희범) 모던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