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자
로버트 D. 카플란 지음, 신윤진 옮김 / 글누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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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동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가가 아닐까 한다. 루마니아는 1차 대전이 일어나고 러시아의 브루실로프 공세에 고무되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다초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상대로 선전했으나 이후 독일이 서부지역의 군사를 빼어 동부전선을 보강한 후 침공해 오자 순식간에 영토의 대부분이 루마니아 군과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만다이러한 독일의 활약으로 전쟁(1차 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항복하고 영토를 할양하고 만다그러나 1차 대전이 최종적으로 연합국의 승리로 돌아가자루마니아는 전쟁에 패해하고도 영토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불과 몇 달 전에 독일에게 항복하고 앞으로 90년 동안 석유를 바쳐야 하는 나라에서 이제 어엿한 승전국의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후의 루마니아의 영토 변화를 보면 정말 놀랍다정말 이토록 영토가 계속 변하는 나라가 있을까그것도 10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서 말이다보통의 국가들은 전쟁에 이겨야 영토가 늘어난다그러나 루마니아는 1차 대전은 물론 2차 대전에서 독일 등 추축국에 가담해 58만 5000명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고 결국 패했으나 이번에도 1941년에 헝가리에 할양했던 영토를 찾아온다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지정학적 위치와 주변이 정세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정보나전쟁사를 통해서 조금씩 접할 수 있었고어릴 때는 그냥 드라큘라의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그 루마니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다니바로 읽어 보기로 했다요즘 거의 매일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있으나 이 책은 일반 책 3권에 해당하는 양이라 일주일에 걸쳐서 읽었다.

 

이 책의 시작은 1981년과 2013년 루마니아의 한 지역을 여행한 저자의 여행기로부터 시작된다이 30년 동안 아니 최근 10(이 책의 시점동안 루마니아는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바로 공산권의 몰락이었다.


1981년 루마니아의 풍경은 참으로 어둡고 침울하다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으스스한 잠수함의 안과 같이 거리는 침묵에 쌓여있다도시 사람들은 허름한 외투를 입고 있고바람에 의해서 침묵이 깨질 뿐이다길을 가면 곧 빵과 연료를 배급 받기 위한 긴 줄이 나타난다사람들은 묵은 빵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너절한 자루를 꽉 지고 있다루마니아 사람들은 어수룩하고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다참으로 축축한 안색들이다거리에는 5만 군중들이 차우셰스크차우셰스크!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2013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저자가 방문한 기간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성주간의 한주이다성당의 내부에 관한 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차우셰스크를 외치던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거리에는 차우셰스크가 아닌 민주화를 위해서 그와 싸웠던 사람들을 기리고 있다이제 루마니아에도 봄이 왔다저자는 이렇게 종교의 자유와 독재자의 몰락을 통해서 공산주의란 암흑이 시간이 끝나고 민주화가 된 루마니아를 묘사하고 있다공산주의 시절 고통 받고 침울했던 도시에는 이제 생기가 돌고 있다과거 공산주의 국가소련의 위성국가에서 이제는 NATO와 EU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제 루마니아의 역사에 관한 글이 시작된다루마니아는 헝가리터키슬라브계 언어를 쓰는 나라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이나 이탈리아스페인어와 같은 뿌리를 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왜 루마니아가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쓰는지 2000년 전의 고대 로마시대의 역사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중세 루마니아는 동양과 이슬람 세력을 막는 방패 역할을 했다술탄의 힘으로 왕위에 오른 루마니아의 왕과 대공들은 그 자리에 오르자마자 술탄을 배신하고튀르크 인들을 학살했다이를 보복하기 위해서 술탄의 군대가 침공해 오면 꼬챙이에 찔러서 죽이는 등 무자비하게 포로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면서 저항했다한 역사학자는 동유럽의 국가들이 이렇게 오랜 시간 이슬람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었고그들의 지배를 받고도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유를 비잔티움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실제로 루마니아에서는 라틴 문화의 유산이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까지도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온 안토네스쿠루마니아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그는 앞서 말했듯이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데 58만 5000명을 병력을 지원한 인물이다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실질적으로 독일의 최우선적 협력자였다보통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생각할 수 있지만이탈리아 군은 전쟁 기간 내내 너무나도 나약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루마니아에서 생산된 석유를 바탕으로 해서 독일의 전차 군단은 기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전쟁 초기 루마니아의 석유는 독일군에게 절대적이었다그는 독일에 협력한 것 이외에도 무려 30만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전쟁에서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진 1944년 그는 쿠테타로 몰락하고 루마니아는 이제 편을 바꿔서 연합국에 가담해서 53만 8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독일에 맞서 싸운다저자는 이러한 루마니아인의 행위를 간사함과 기회주의민족적 사리사욕에서 찾지 않고 지정학적 위치에서 찾고 있다지리(지정)적 위치 이는 그만큼 루마니아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것이다.


 

 

이 책은 루마니아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지리와 정세분석 서양 고전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어느 도시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저자는 그 곳의 문화유산을 둘러본다그에 더해서 역사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풀어 놓으면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역사와 정세지역에 관한 책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다고 하니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국내의 열악한 출판사정과 루마니아에 대한 국내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앞으로 이런 종류의 책이 계속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이러한 환경 속에도 책을 번역한 저자와 출판한 회사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이 책이 앞으로 루마니아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정신적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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