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J 달달 옛글 조림 1
유준재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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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이 곧 삶임을 비로소 체감하기 시작한 낯선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종이 위에 쓰인 활자를 집중해 읽을 수 없게 된 오랜 밤. 몇 주 새 갑자기 하얗게 세어버린 앞머리.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변화는 너무나 명료하여 그것 또한 삶의 일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곧장 삶이 되어버렸다.


큰 글자의 전자책을 자주 찾는 두 눈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일. 거울 앞에서 세지 않은 사분지 일의 검은 머리카락을 들춰보며 마음을 다독이는 일.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듯한 하루와 하루 사이에서, ‘아직’이라는 한숨을 자주 내쉰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 않나. 아직은 괜찮아야 하지 않나. 아직은. 아직은?


이제 나에게도 조금씩 옅어지고 흐려지고 바래지는 일만 남은 건가. 마음의 내리막 위에 선 이 계절의 나는 자주, 루돌프J였다. 빨간빛을 잃어 하얗게 새어버린 코로 인해 더는 썰매를 끌 수 없어 산타 마을을 떠나게 된 루돌프J. 터벅터벅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걸음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올 때. “두렵고 외로운” 밤의 일은 하얗게 훌쩍이는 것뿐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거울 앞에서 멍하니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러나 옅어지고 흐려지고 바래진 코만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책장 안팎의 우리를 돕는 이가 있다. 바로 루키라는 별명을 가진 빨간 코의 어린 사슴, 루돌프K. 그의 앞선 삶을 보고 배우려 그의 옆으로 찾아온 루키와 함께, 루돌프J는 이전과 달라진 계절을 하나씩 통과해 간다. 루키가 루돌프J에게 전해준 편지에서 산타가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시간을 하루씩 체험해 간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을 다시 맞게 되기까지, 루돌프J는 ‘루키’라는 거울 앞에 자주 섰을 것이다.


빨갛게 빛나지 않는 코를 천천히 받아들이며. 

빨갛게 빛났던 시기에 자라온 풍성한 수염과 늠름한 두 뿔을 돌연 알아차리며.


빨갛게 빛나지 않아도 다른 듯 여전한 자신을 발견하며. 

빨갛게 빛나지 않아도 다르게 빛나는 자신을 믿으며.


마음과는 상관없이 옅어지고 흐려지고 바래져 버린 몸처럼, 예상치 못하게 맞닥트리는 생의 눈보라. 언제든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루돌프J는 생의 또 다른 내리막을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또 다른 ‘여전함’을 알아차린 루돌프J. 그가 지켜낸 것은 결코 그 자신뿐일 리 없다.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묻고 거는 마지막 물음표가 환히 빛나는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다음과 다다음 계절의 우리를 이미 알고 있는 물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내딛게 걸음. 거울 권을 옆에 끼고서 이북 리더기를 알아본다. 거울 권을 곁에 두고서 염색약을 발라본다. 조금씩 옅어지고 흐려지고 바래질 나와 함께살아가려는내가 씩씩하고 꼼꼼하게 내리는 오늘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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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주니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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