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 #푸른숲 #피터스완슨 #노진선 #푸른숲가드너 #푸른숲가드너1기 #추리소설 #살인 #여덟건의완벽한살인 #반전 #꿀잼 #책추천 #도서제공

피터 스완슨의 완벽한 추리소설, 그리고 노진선 번역가의 완벽한 번역

나는 독서를 편식하는 편이다. 아마 읽고 싶은 책만 읽으라고 그냥 내버려뒀다면 나는 사회 과학서와 심리학서와 정신분석학서에 골몰했을 것이다. 그게 요즘 나의 최고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공포영화와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신적, 심리적 불안도가 꽤 높은 편인 나는 대체 왜 돈을 주고 공포와 불안을 사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재미와 안정 중에서 내게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정이었나보다.

그런데 그런 내게,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의 지평을 바꿔놓은 소설이다. 나 추리 소설 좋아했네. 아니 근데 추리소설 중에서도 피터 스완슨x노진선 소설을 좋아했네. 일단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제목이자 소재로 쓴 피터스완슨의 소설이라는 것이 구미를 당겼고(이 소설도 꼭 읽어볼 셈이다. 일단 필력은 보장됐고, 번역가님도 보장됐다. 소재도 마음에 든다. 물론 죽여 마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 본 소설인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또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완벽하게 죽인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문학을 모티프로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고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 큰 애들 앞에서 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되는 사람으로,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특히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살면서 문학이 모방 범죄의 모티프가 된다는 것이, 이미 쓰인 소설인데도 묘하게 불안해서 가슴 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벌레 한 마리에게도 감정이입하곤 하는 내게 살인이라니. 그게 문학이 시킨(?) 살인이라니.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읽다보니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확인해서(?) 죽인 것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공포영화나 추리소설 같은 데서 살인 사건이 나오면 그걸 회피하곤 했던 이유는 피해자의 서사가 지워졌기 때문이었었다. 피해자는 몇 십 년을 그렇게 허무하게 죽도록 살아온 것이 아닌데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다고? 심지어 주님은 착한 사람부터 데려가시는 경향이 있다. 착하고 순한 사람 위주로.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사설 정의구현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반대로 누구에게도 죽어 마땅하지 않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놓고 개 쓰레기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개똥철학이라도 논리라는 게 있었을 테니까. 불륜을 옹호한 그녀처럼, 혹은 사실은 가장 잔인한 사람이었던 그처럼. 하지만 어쨌든 허무한 죽음들이라기보다는 파면 팔수록 사실은 그래도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혹은 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불안해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소설. 추리소설이고 분명 반전이 확실한데 읽을수록 의식이 명확해지는 소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추리소설이라서 썼다 지웠다 하는 말들이 많다. 아 드릉드릉.

선생님들, 이 책 읽고 오세요. 읽고 오셔서 저랑 얘기 좀 해요. 아니 피터 스완슨 x 노진선 모임이라도 팔까요? 으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일단 읽고 오시면 해야 할 거 같은 소설. 저는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읽으러 갑니다. 일단 노진선 번역가님의 정말로 영어에 ‘Jonna’ 라는 욕이 있었던가 싶은 살아있는 번역 때문에 읽다보면 숨죽이고 읽으면서 다음 장이 궁금해서 드릉드릉하구 피터스완슨이 한국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할 준비도 하시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숲 #서평단 #진실의조건 #오사빅스포르 #책추천 #철학
#포스트트루스 #리터러시 #언론

대학교에 다닐 때 학보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그저 사진기를 많이 다뤄보고 싶어서 들어간 신문사였지만, 들어가서 활동하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남들보다는 조금 더 고민해보게 되었지 싶다. 게다가 기자들에게 칼럼을 쓸 기회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 내 칼럼의 제목은 '좋은 게 좋지 않다'였다. 나는 좋은 게 좋지라는 식의 이른바 '퉁치기'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물론 인간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실에 관해서는, 혹은 명백한 사실에 관해서는 좋은 게 좋을 수가 결코 없다. 특히나 어떤 정책에 관해서, 사람들은 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싫어한다면서 그걸 가장 먼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혹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양 굴면서,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에 거지 같은 논리를 앞세우면서 '아니 암튼 맞아.' '왜 내 말을 못 믿어?'따위의 억지논리 혹은 가스라이팅을, 혹은 암묵적 편견을 앞세운 폭력을 써왔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굉장히 명확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조금 어렵다. 그런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우리가 그간 어렵다는 핑계로 외면해온 아주 불편한 진실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체념하고 포기해버렸던 부끄러움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통통 깨지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렇게 회피해왔던 나날들, 아 저 사람이랑은 말이 안 통하니까 저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해. 라고 생각하고 그냥 좋은 게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강제로 좋은 거라고 해왔던 나날들에 비하면 이 책은 답도 없는 사람들을 앉혀놓고 정말 쉽고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짱 멋있는 언니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 몰입력은 장난 아니다.

왜 이 책을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주었는지 알겠다. 우리 나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고집이 세질 거고 자기가 믿는 게 사실이며 진실이고 진리라는 확신을 자꾸만 가지려고 할 테니까. 그리고 이런 설명에 저항할 테니까 그렇겠지. 오히려 고등학생들은 이런 새로운 진실에 탐구적으로 접근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암묵적 편견의 피해자인 약자이니 이 책을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진실의 조건에 접근하고 새로운 무기를 얻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열심히 이 책을 분석하며 읽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은 필기하고 정리하며 읽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고 명확해지며 동시에 나의 부족했던 세계가 완성되어간다. 웬만해서 말싸움 안 지는데 정말로 안 질 거 거 같다. 내 생각을 정립하는 체계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당장 메모장을 준비하고 이 책을 읽자. 이게 귀찮거나 두렵다면 당신은 이미 굳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너무 맞는 말이 많아서, 줄치다 지쳐 북스캔 떠서 마음껏 밑줄 치고 있다. 반복해서 더 읽고 내 생각을 다듬고 의심하는 지침서로 쓰고자하는 책, 진실의 조건을 추천하며, 민감함에 늘 용기있게 다가서서 양서를 전해주는 출판사 푸른숲의 결을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사랑해요 푸른 숲 :) 읽어요 진실의 조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소한의 경외와 최소한의 예의에 관하여



#서평단 #강출판사 @gangbook_ #모란시장 #이경희장편소설 #이경희

제목을 보자마자 이 소설은 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모란시장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멀지만 가까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모란시장의 이미지는 썩 좋지만은 못했다. '개시장'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장동에 소시장이 있다면 성남에는 모란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미지가 달랐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모란시장하면 비위생적으로 도축되어 눈을 감고 배를 열린 개들의 애잔한 모습과, 상자에 아무렇게나 담긴 강아지들이 병아리마냥 대충 팔리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장을 그렇게 기억해서 정말로 미안하지만. 그래서 그게 오해였다면 풀고 싶었고, 아니었다면 그시절의 모란시장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사실 아직도 나는 그 동네 근처에도 가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나는 순간부터를 영등포에서 살았다. 영등포 시장과 영일청과물시장 주변에서 시장의 생리를 한소끔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봐온 나의 시선은 삽교와 닮은 듯도 했다. 도시에서 살았지만 억척스럽게 시장에 다니고 종종 배추시레기를 줍기도 하던 시절을 살아왔고, 시장의 각종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장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까운 게 청과물 시장이나 건어물 시장이라서인지 시장에 대한 두려움(?)은 좀 적었지만, 억척스러움과 닳아짐의 이미지는 짐짓 융통성이 없는 나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것이기는 했다. 영등포시장처럼 커다랗고 날것들이 난무하는-돼지 머리라든지, 혹은 생선의 내장 같은 것이 여과없이 질척한 바닥위에 깔린 좌판에 놓여서 내게 들이밀어지는- 때에는 곳에서는 길이라도 잃을까봐 정신을 바짝 부여잡았던 기억이 난다.

책의 소개만 보았을 때는 경숙의 처지를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그러나 너무나도 존재했을 법한 하이퍼 리얼리즘적 처지에 묶인 경숙의 사연에 너무나 답도 없어 머리를 부여잡았다. 와중에 이게 하이퍼리얼리즘인가 싶지만 박사장 같은 인간 말종에게 금자까지 기생해야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물론 많은 쓰레기들은 납득이 안 되니까 납득되면 쓰레기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금자의 서사가 너무 지워진 채로 금자가 경숙을 압박하는 존재로만 등장하는 것은 아쉬운 면이었다. 뭐 삽교가 보기에는 나쁜 것과 좋은 것만 존재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물론 많은 여성 폭력의 피해자들이 그렇듯이 독립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려니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복잡한 서사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는 굴레에 얽매게 되었을 경숙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결국 분명치 않은 뉘앙스였지만, 결국 비극적인 끝을 통해서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 경숙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하다. 그러나 생판 남인 능평꽃집 여자와 명진이만도 못하게 경숙을 짓누르던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서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잃지 않으려는 것을 끝내 지키고 자신의 끝을 자신이 맺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삽교 기준의 '착한 인간'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또한 작품에서 인물로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뤄낸 것도 경숙이다. 능평꽃집 여자가, 명진이 짐짓 걱정해야했던 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경숙의 성장스토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생리는 사람 하나가, 개 한 마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부당한 세력에 저항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죄에 대해 인식하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고 숭고하게 일하는 꿋꿋하고 꼿꼿한 자들로 인해 부단히 이득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삶을 꾸짖을 수 있게 된다. '죄 없는 자만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라'는 말은 틀렸다. 누구나 죄가 있다고 해서 그 죄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더 무한한 죄를, 자신이 짊어지지도 못할 죄를 짓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경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을 수는 없다. 또한 무한한 죄를 짓는 사람들이 반대쪽의 생명들을 그저 이용하도록 두어서도 안 된다. 덕상이가 죽어도 그 자리에는 덕상이의 후예가 들어서고, 마찬가지로 악의 축인 박사장이 죽어도 그 자리는 아마 나사장 같은 똘마니들이 들어찰 것이다. 그러나 그 고리를 끊고 나가는 경숙의 용기는 결코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 그 생명이 거래되고 그럼으로 인해서 다른 생명을 이어가게 하지만, 그래도 그 생명을 악용하는 사람과 경외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찝찝하게나마 닫힌 듯이 열려있는 결말로 가는, 콩나물 거적으로 덮어놓고 외면해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이야기. 그러나 결코 덮어두고 갈 수는 없는 이야기를 여러분들도 함께 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1주년 스페셜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가지 않은 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아이들의 수업 이해도 편차는 크다. 그건 강사로서의 나의 자질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들이 가지고있는 자원과 도구의 문제다. 애들이 수업에 들어올 때 들고 들어오는 도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는 하지 않냐고? 단기전에서 한입거리로 음식 만들어서 입에 쑤셔넣어주는 건 누구나 한다. 그걸 소화시킬 수 있느냐, 그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하느냐의 문제지. 애들의 상태를 비유하자면 누구는 손에 티스푼을, 누구는 숟가락을, 누구는 국자를, 누구는 포크레인을 몰고 들어와서 딱 한 번만 땅을 파기로 하자! 하는 게 시험이다보니까, 애들은 애들대로 답답하고 나는 나대로 답답하다. 그래 뭐 우공이산이라고 티스푼으로 졸라 열심히 파면 어느 순간 포크레인을 이길 수도 있겠지... 근데 포크레인은 가만히 있을까? 도구를 바꾸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래서 좀 짬을 내서 개념부터 다시 알려줘서 도구를 바꿔 싶은데 고2애들의 초조함이 그걸 받아들일지는 약간 의문이다. 그걸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나는 한 발짝 빗겨서서 조망하는 입장에 있는, 당사자지만 1인칭 관찰자쯤 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막상 그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뀐다면, 내가 이렇게 알고 있는 사실도 거짓말같이 모르는 사실이 될 것이다. 다 알면서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거. 알면 뭐하나 피해가질 못하는데. 예지몽 꾸는 사람이 이런 기분인가.

이 책은 어바웃 타임, 뷰티인사이드, 킬미 힐미 등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은근 많이 왔다간 장르물이다. 물론 다른 삶을 살아본다는 장르물로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구운몽 정도고, 랜덤으로 자기 삶이 주어진다는 건 뷰티인사이드나 킬미힐미,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비슷한 것은 어바웃타임으로 포인트는 각자 다르다. 그런데 이 작품의 킥은 번역이다. 원문은 읽을 영어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번역가님의 출중한 센스는 읽는 내내 이 소설이 외국 소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말투로 독자의 삶에 사뿐히 녹아온다.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갈수록 그 삶이 맛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그 삶 같고 그 놈이 그 놈 같은 게 아니라 결국 '죽고 싶다는 말'이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간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위한 인생을 살아간 적이 없다는 것, 그간 자신이 믿어왔던 자신의 행복나 성취가, 심지어 이로 인해 자신을 잠식한 불행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고 깨닫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노라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참 그런 존재다. 우리한테는 아직 도서관이 있을지도 미지수고, 엘른 부인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으니 노라를 보고 차근차근 깨달을 수밖에 없다. 노라는 그간의 자신의 선택들에 대해 자신이 했던 후회와 전혀 다른 시점에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게 너무 부러웠다. 특히나 연애를 할 때 조상님 찬스 혹은 주님의 사랑어린 시그널을 그동안 흐린 눈으로 지나쳐온 나에게, 그것이 응당의 담금질과 같은 시련이지 도망치라는 신호라는 것을 몰라본 척해온 나에게 그가 댄의 정체를 알게 되고, 매력적이지만 재미없는 남자, 착하지만 착하기만 한 남자, 무려 댄 때문에 지나쳤지만 진국이었던 남자들에 대한 조상님의 시그널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생긴 것, 자신이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한 장단을 느끼고 미련으로 후회하고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가능성을 찾고 자존감을 찾아가게 된 과정들을 직접 찍어먹어봐가면서 알게 된 것은 '결국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너무 부러웠다. 그러나 분명 내게도 유추해보건대, 그런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나도 평행세계의 한 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내 가능성을 찍어먹어보고 있는 중일지도?

이틀 동안 숨도 안 쉬고 읽었다. 너무 재밌었다. 더 많이 쓰면 스포가 될 테니 스포해도 재밌겠지만 스포 안 할 거다 메롱.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이니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두 번 읽을 거다. 여러분도 두 번 읽으시라. 마지막으로 독서 장려짤 하나 올리고 마친다. 엘른 부인의 낯선 모습을 '개구라'로 표현하는 번역가님의 킥. 원문은 대체 뭐였을까. 정리는 덜 됐지만 뭐라도 기록하고 싶어 드릉드릉한 글이라 여러 번 수정될지도 모른다. 암튼 읽으시라.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와 일하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박진숙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작은가게에서어른이되는중입니다 #사계절출판사 #사계절교사북클럽 #사계절북클럽
#서평단 #도서협찬

십여년 전쯤에 교생 실습을 했었다. 별로 형편이 좋지 못한 동네(?)에 위치한 부속 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자취를 하고 있던 동기들이 치킨 배달을 시켰는데 자기 반 학생이 찾아왔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은 밤에 배달을 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잠을 잤다. 별달리 버릇이 없는 아이들도 아니었다. 첫날부터 이유없이 교생 담당 선생님의 눈밖에 나서 학년 대표로 고생하고 있던 나를 반겨주고 의자를 챙겨주던 살가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 "꿈은 없고 회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같은 말을 했다. 그땐 나도 어렸어서 아...그렇구나 하면서 속으로 '야, 평범하게 사는 게 쉬운 줄 아니.'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백조가 물에 도도하게 떠있기 위해서 물 아래서 발이 보이지 않도록 발을 젓는 것 같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몇 장 읽다가 문득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처음에 나는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서 뜨거운 세상을 배워가는 이야기인 줄 알고 한창 책을 노려보기만 했다. 물론 그런 얘기긴 했는데 좀 결이 달랐다. 그런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 그대로 날것으로 던져질 아이들을 자신의 안온함을 던져가며 단지 몇이나마 구해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교생을 나갔을 때, 나는 정말로 철없는 소리를 했었다. 배달일을 하면서 당장 필요한 돈을 벌고 학교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밤마다 열악한 형편의 노동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배달일을 하면 월급이 내내 오르지 않지만 지금 조금 버텨서 공부를 하고 실력을 저축해서 더 큰 돈을 벌면서 살면 좋지 않겠냐고.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그때 그렇게 했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생활'이 중요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책으로만 보장적 평등 같은 걸 달달 외웠을 뿐(사실 교육학을 별로 안 좋아하기는 했다.)이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외로운 길을 부모님이 사준 '나이키'신발을 신고 걷는 어린 젊은이, 브랜드 없는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이, 부모님이 밤새 정성스럽게 짜준 '짚신'을 신고 가는 이, 아예 그런 형편도 되지 않아 '맨발'로 걷는 어린 젊은이들이 경쟁하고 걷고 있을 때, 맨발로 걷는 이는 주변을 살피며 무엇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면서 불행하게도 나이키를 신은 이가 걷는 길은 '타탄트랙'처럼 평탄한 길인데,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이의 길은 '자갈밭' 같은 길이고, 맨발로 걷는 이의 길은 '갯벌 진흙탕'과 같은 험난한 길일 개연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맨발로 갯벌 진흙탕 길을 걷는 어린 젊은이는 무엇으로 꿈과 희망을 지탱해갈 수 있을까요? 걸어가는 방향과 목표를 잃지 않고 어떻게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맨발로 갯벌 진흙탕을 걷는 젊은이와 나이키 신발을 신고 평탄한 길을 걷는 젊은이가 도착하는 곳은 같을까? 비록 맨발로 갯벌 지늙탕을 걷더라도 결과가 같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교육의 역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종착역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안다."
최소 운동화는 신고 자갈밭 이상은 걸었을 내가 하는 말이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그리고 고작해야 나와 5~6살이나 차이났을 아이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아이들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한다는 압박까지도 지고 있었던 아이들이었는데.

책 초반부에서 읽어낸 저자 선생님인 씩씩이님의 진심은 정말이지 전심이었다. 그간 나름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도 저렇게나 전심으로 나를 던져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터에서 만난 아이들을 위해 오롯하게 생각과 계획을 짜고 전심을 던져 실패했기 때문에 그는 마침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장미빛 미래가 아니라 맨발을 진흙탕으로 건너지 않는 안온한 현재임을, 그 현재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늙은 미래임을 깨닫고 아이들과 한 방향을 바라보며 고민할 수 있는 참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숱한 실패와 헛발질 끝에도 남은 몇 명의 아이들의 변화를 함께하고, 그 아이들이 이 일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짜 일'인지 자신을 던져넣어야 할 '진짜 일'인지를 고민하게 하고, 자신의 안온한 일상을 던져 함께 모험할 작은 조각배에 동지들을 태우고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영원한 것은 없어서, 가게가 네이버 지도에는 표기되지만 얼마 전 영업을 종료했다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안타깝게 그 숭고한 현장을 눈으로 마주하지는 못할 공산이 커졌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라면 어디선가, 또 무슨 새로운 엄청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안온한 현재를 이어나가고 있을지도, 혹은 조금 쉬고 더 엄청난 배를 만들어 동지들을 태울지도, 이해와 변화의 씨앗이 되기 위해 자신을 던져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안온하게 뭣도 모르면서 고작 학급 일 열심히 시켜놓고 간식이나 밥 사주면서 "얘들아, 나중에 어디 가서 절대 공짜로 일해주고 그러지 마. 꼭 응당한 대가는 받으렴." 이라는 소리나 하면서 좀 괜찮은 소리 했다고 뿌듯해하는, 미래를 위해서만 행복을 유보하지 말라는 얘기하면서 좀 멋진 얘기했다고 뿌듯해하는 쪼랩 운동화러인 나보다 훨씬 더 뜨겁고 쓸모있게 말이다.

문득 생각했다. 내게도 그런 제자들이 있다. 흔들리는 제자들도 있고, 숱하게 떨어져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을 부여잡을 때 옆에서 나를 부축해 일으켜주고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미는 제자도 있다. 다 제가 잘한 덕인데 선생님 덕분이라며 매년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다. 미숙하고 뜨겁고 컨트롤되지 않았던 나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선생이었을 수 있었다. 마침 교사로서의 나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지지부진한 방향 고민에 문득의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준 작은 책의 큰 열정 덕분에 내 통시적 서서와 공시적 시야를 돌아보게 되었다. 교실에서 뜻하지 않게 생각지도 못할 많은 상황과 학생들을 마주칠 선생님들께, 그때 미숙한 열정과 경험해보지 못한 삶들에 대한 서툰 재단으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들께,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