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온 더 락 창비시선 535
고선경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선경 작가의 시집 <러브 온 더 락>은 무너진 세계의 잔해 속에서 사랑의 파편을 수집해 올린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기록과도 같습니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정서는 제목이 암시하듯 ‘위태로움’입니다. 얼음 위에 부어낸 독주처럼, 차갑고도 날카로운 감각이 독자의 목울대를 자극하며 시작됩니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미화하곤 하는 사랑의 낭만을 과감하게 걷어냅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상처 입은 육체, 부서진 가구, 그리고 끝내 연결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도는 말들입니다. 고선경의 언어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담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독자를 낯선 감각의 영역으로 밀어 넣습니다. 특히 일상적인 풍경을 일순간에 기괴하거나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뒤바꾸는 감각은 이 시집의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시편들 속에서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재난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재난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난의 중심부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슬픔의 정체를 응시합니다. "우리는 모두 망해가고 있다"는 냉소적인 인식 아래에서도, 역설적으로 그 망해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아름다움과 연대를 포착해 냅니다. 이는 단순히 비관적인 정서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생동감을 보여줍니다.
또한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도시적 감수성과 감각적인 문체는 젊은 시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과감함을 담고 있습니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듯한 어조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통찰은 시를 다 읽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러브 온 더 락>은 사랑이 우리를 배신하고 삶이 바닥을 칠 때, 그 차가운 바닥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입니다. 아프지만 외면할 수 없고, 서늘하지만 결국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을 가진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