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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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는 단순한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점차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연의 폭력성, 욕망, 그리고 존재 의미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묵직한 여운과 함께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시선입니다. 영혜의 채식 선언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남편은 혐오감과 경멸을 표하고, 아버지는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 들며 폭력을 행사합니다. 심지어 영혜의 상태를 걱정하는 언니조차도 결국은 자신의 방식으로 영혜를 이해하려 들며 미묘한 폭력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소설은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가 겪는 정신적 폭력, 타인의 시선과 규범이 가하는 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혜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 병원에 갇히게 되는 과정은 이러한 폭력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섬뜩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욕망과 금기에 대한 탐색도 인상 깊었습니다. 영혜의 채식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특히 육식이라는 본능적인 행위를 거부하고 금기를 깨뜨리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꿈에서 시작된 끔찍한 이미지를 통해 육식의 잔혹함을 인식하고, 이는 곧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녀의 형부, 즉 언니의 남편이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는 행위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과 금기의 파괴를 보여주며, 이는 더욱 기괴하고 파괴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향하는 대상이 지닌 금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독자는 불편함과 동시에 매혹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혜가 나무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생명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뿌리를 내리고 빛을 갈망하는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이는 인간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소멸시키면서 다른 형태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영혜의 모습은 인간의 한계와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스스로를 규정하고, 또 어디까지 벗어날 수 있을까요?

<채식주의자>는 읽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타인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편협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영혜의 극단적인 선택과 파괴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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