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표작으로 'Big Sleep'은 영어로 '죽음'을 뜻하는 속어다. 이 속어 자체가 <빅 슬립>에서 유래되었으며 챈들러가 만들어낸 단어다. 

죽은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으니 어느 쪽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름이든 물이든 바람이나 공기와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부당하게  죽었건 어디에 버려졌건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밤을 잘 뿐이다. 

_<빅 슬립> 


<빅 슬립>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소개되었으며 1946년 미국 장르영화의 대가 하워드 혹스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개봉됐다. 이 작품으로 40년대 필름 누아르의 큰 영향을 끼쳤다. 

담청색 양복에 암청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장식용 손수건을 꽂고, 검은색 단화를 신은 말쑥한 차림의 사설탐정 필립 말로. 퇴역한 군인이자 드넓은 유전을 가져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스턴우드 장군의 부름을 받고 저택을 방문하게 됐다. 그는 두 다리가 마비되고 아랫배 절반만 살아남은 불구자가 되어 죽음이 부르는 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다. 

유일한 혈육이자 예쁘고 젊은 두 딸은 그야말로 노인의 재산과 삶을 갉아먹는 존재였다.


첫딸인 비비언은 명문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세 번 결혼했고 버릇없고 모진 편이며,  둘째딸 카멘은 파리 날개를 뜯어내기 좋아하는 어린애고 둘 다 도덕관념 따위는 고양이만큼도 없었다.   



10대 소녀인 둘째딸 카멘은 스턴우드 저택을 방문한 필립 말로를 보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한다. 의도적으로 야릇한 상황을 연출하는 천방지축 아가씨. 


죽음을 앞둔 스턴우드 장군은 사설탐정 필립 말로에게 협박 편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재산을 갉아먹는 기생충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장군과의 미팅 후 첫째딸 비비언은 그를 불러 밀주업자 출신이자 한달 전 사라진 세번째 남편 러스티 리건의 행방을 찾는 것인지 묻는다. 아버지의 요구사항이 뭔지 끈질기게 묻는 비비언.


젊고 매력적인 두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협박편지를 추적하면서 베일에 감춰진 스턴우드 가의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필립 말로. 


잘생기고 똑똑하지만 냉소적인, 치명적인 매력을 지난 사설탐정. 

아름다움으로 그를 유혹하려는 비비언과 카멘, 

그런 그녀들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나쁜 남자 말로.


한번 읽게되면 멈출 수 없는 강렬한 작품이자 스치듯이 만난 인연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말로의 아슬아슬한 행보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헤밍웨이, 존 밴빌, 조이스 캐럴 오츠가 극찬한 작품이자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빅 슬립>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소개되어 고전으로 인정(?) 받아 더할나위 없이 기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말하자면 도스토옙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작품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내 결승점인지도 모른다. 


_무라카미 하루키  


죽은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으니 어느 쪽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름이든 물이든 바람이나 공기와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부당하게 죽었건 어디에 버려졌건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밤을 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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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0-1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말에 취해 레이먼드 챈들러를 접하고 넋을 잃었던 1인 여기. ㅎㅎㅎ
문동 세계문학전집으로 다시 사모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