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자서전 - 동양평화론 수록
안중근 지음 / 더스토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 전에 생각한 것처럼, ⟪안중근 자서전⟫은 그 저자가 생각한 바가 여실히 드러난 자서전이었다.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받은 인상은 귀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거다. 역사를 배우며 본 안중근과 직접 쓴 안중근이 그리는 '안중근'은 면모가 다른 이었으나 그가 한 행적은 거짓이 없음을 확신하고 읽었다.

  역사를 배우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그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보고자 하여도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로 배우는 안중근 의사 행적은 위처럼 나오지 않는다. 아니,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다는 대목은 같다. 독립운동가와 그가 한 일을 열거할 때 빠짐없이 나와서 그런지 아니면 그 이상을 다루지 않아야 하는지 다른 이들처럼 위 내용을 가장 많이 다룬다. 그저 그 장면을 회상하라면 추운 곳, 총이 발포된 순간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선생님이 해 준 설명을 잊은 걸지도 모른다. 





    ⟪안중근 자서전⟫은 그가 태어난 생애부터 10대 시절도 나온다. 시종일관 어투, 행보는 어린 시절이나 마지막까지 비슷하나 독립운동가라는 단어 뒤로 따라오는 '진중함'을 찾기 어려운 장면도 있다. 그건 그거대로 안중근이란 사람 자체를 볼 수 있어 좋은 전환점이 됐다. 조부 밑에서 커서 슬퍼서 병을 얻은 것도 사냥을 좋아한 것도 몰랐다. 한 번은 꽃을 따려다가 절벽 밑으로 떨어질 뻔하였는데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저자는 '이때가 위험한 지경에서 죽음을 면한 첫 번째 일이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안중근 자서전⟫은 제목 그대로 안중근이 회고한 일생이 담겨있기 때문에 유명한 사건만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 사진은 억울한 일을 겪은 이를 도우러 갔을 때 나눈 대화로, 김중환에게 돈 오천 냥을 빼앗긴 일을 해결해야 했다. 두 번째 사진은 안중근이 홍신부와 나눈 대화로, 때는 1905년(을사) 이었다. 비단 위 사진만 그렇지 않고 ⟪안중근 자서전⟫ 내내 실제 사건이 암시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걸 의식하고 저술하거나 편집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이전 언급된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두 번째 사진에서 직접 언급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라지만, 그 면을 살펴보기 위해선 여러 문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유적지를 찾아가고 발굴하는 것도 좋겠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나 또한 그런 연유로 ⟪안중근 자서전⟫을 읽었다. 오늘 두 차례 인용하였는데 안중근은 어째서 자신이 위와 같이 말하였는지 모른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만약 그 느낌을 무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누구는 직감이라 말하고 운명이라 말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알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회고한 '번개입電口' 일화도 그러할까? 그가 가진 생각이 드러난 대목으로 봤다.

  누구는 이를 마땅한 일이라 칭찬하고 그 시대상을 감안하라 하였다. 그 말대로 안중근이 가진 면모를 다각도로 볼 수 있었고 잊지 말아야 할 일화로 기록하였다. 안중근은 누군가의 아들이었으며 남편이었고 독립운동가였으나 안중근 그 자체도 존재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해 봄 여름 사이에 동지 몇 명과 한국 땅으로 건너가서 이런저런 동정을 살피고 싶었으나, 활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허송세월만 보내던 중 초가을 9월이 왔으니, 이때가 곧 1909년 9월이었다.
그때 마침 얀치헤 쪽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까닭 없이 마음이 우울하고 초조함을 이길 수 없어 스스로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친구 몇 명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네."
그 친구가 말했다.
"어째서 이같이 기약 없이 갑자기 가려 하는가?"
내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네. 그저 마음이 심란하여 도무지 여기 머물 수가 없는 까닭에 가려는 것일세."
그가 물었다.
"지금 가면 언제 돌아오려는가?"
나는 무심결에 말을 내뱉었다.
"다시 오지 않을 것일세."
그 친구도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지만, 나 또한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알 수 없었다. - P112

그곳에서 바라보니, 러시아의 관리들이 호위하여 둘러싸고 오는 앞쪽에 일개 한 명의 얼굴이 누렇고 머리가 센 조그마한 노인네가 염치없이 감히 천지간을 횡행하고 있었는가! 저것이 필시 노적 이토일 거라 여기고 즉시 단총을 꺼내어 우측을 향하여 4발을 쏘았다. 그런 뒤 생각해 보니 의문이 뇌리에 스치기를, 내가 이토의 얼굴을 모르므로 만일 한 번 잘못 쏜다면 큰일에 낭패를 보는 것이리라. 다시 뒤로 돌아서서 일본인 무리 중에 가장 위엄있어 보이며 전면에서 앞장서는 자를 목표로 삼아 3발을 연사했다.
만일 죄 없는 사람을 엉뚱하게 해쳤다면 일이 불미스러워질 거라 생각하며 멈춰 생각하고 있을 때 러시아 헌병들이 와서 나를 체포했다. 이때가 1909년 음력 9월 13일 오전 9시 반 경이었다. - P123

만일 동지라 할 만하면 강개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며 유쾌하고 즐겁게 술을 마셨고, 취해서 노래를 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때로는 기생집에 가서 놀면서 기생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의 아름다운 자태로 호걸 남자와 배필을 이루어 해로하면 어찌 좋겠느냐. 너희들은 그러지 않고 돈 소리만 들으면 군침을 흘리며 정신을 못 차리며 염치 불고하고 오늘은 장씨의 부인 내일은 이씨의 부인하고 금수의 행실을 하는가."
이와 같이 말을 하면 기녀들이 좋아하지 않아 싫은 낯빛이나 공손하지 못한 태도가 밖으로 드러나면 욕을 해 주거나 매를 쳤다. 이 때문에 친구들은 나에게 ‘번개입(電口)‘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