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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하이드어웨이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평점 :

누구에게나 나만 알고 싶은 장소가 있다
빌딩으로 가득찬 삭막한 도시에도 마음 쉴 곳이 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한숨 돌릴 은신처가 필요한 모두를 위한 여섯 편의 이야기가
마음 속에 살며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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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하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숨 돌릴 장소가 어딘가엔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파라웨이
물류창고에서 본사 마케팅팀으로 오게된 기리토는
잘 나가는 동기인 나오야로부터 무슨 낙으로 사냐는 말을 듣는다.
자신과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반사적으로 그 자리를 피했지만, 그 말은 마음 속에 박혀버렸다.
그러면서 과거 아버지와의 일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러던 중, 거침없이 나아가는 시스템 팀의 리코를 보게 되고,
홀린듯이 그녀를 뒤따라 '한낮의 플라네타륨'에 들어가
하늘 가득 펼쳐지는 은하수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그곳에서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기리토는 리코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미워하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와
가슴앓이처럼 남아있던 죄책감을 떠나보내게 된다.
플라네타륨에서 위로받는 리코와 기리토,
전시된 배를 통해 방주를 떠올리는 에리코,
복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기리토,
미술관에서 힐링을 하는 히사노,
해파리와 같은 삶이라는 미쓰히코,
그리고 혹성에서의 리코와 기리토.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의 은신처를 맞이한
여섯 편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공감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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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처는 결코 도피처가 아니다.
은밀히 힘을 기르는 곳이다.
이야기를 읽다가 지난 직장생활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에겐, 힘듦을 겪던 나에겐
은신처라는 곳이 있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그런 장소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일이 끝나면 지쳐서 잠들기 바빴고,
깨어있을 땐 다시 일하러가기 바빴다.
어쩌면 작품 속 '기리토'와 같이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만 되는 줄 알았다.
지나고나서야 너무 애를 썼음을,
대다수는 그렇게 하지 않음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때가 떠오르면서 공감되는 사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을 덮기 전, 작가의 말에는
'도망치는 건 어렵더라도 잠시 숨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라며 은신처가 필요한 우리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처럼,
숨가쁘게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겐
쉼표,를 찍어야할 나만의 숨쉴 곳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걸음 나아갈 힘.
우울한 상태를 벗어날 힘.
우울한 마음을 떨쳐낼 힘.
'나' 자신으로 우뚝설 힘을 키우고 지킬 그런 곳.
지금의 나에겐
한숨을 돌릴 특정한 장소는 집이 되었다.
일이 고되더라도, 집에 오면 반겨주는 이가 있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게 만드는
바이러스 같은 녀석들이 있다.
플라네타륨, 미술관, 아쿠아리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편안한 장소가 되어야할 '집'이
나에겐 최고의 은신처가 아닌가싶다.
웃고, 떠들고, 마음을 나누고,
그렇게 다시 하루를 나아갈 에너지를 얻고,
다시 돌아와 배터리를 충전하듯 힐링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평범하다해도
그저 좋은 오늘 하루.
그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옆에 있는 행복바이러스를 보며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