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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여덟 가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괴이하면서 슬픈 이야기들
유령, 집착, 고독, 기괴, 슬픔, 꿈, 업보, 다양한 소재로 버무려낸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신체조각미술관]
더 바디 갤러리의 큐레이터.
그녀의 설명을 따라 신체조각미술관을 관람한다.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진, 신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을 따라가며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그 끝에, 섬뜩한 한 장의 서류가 놓여있다.
[블루홀]
[푸른 인어]
인간의 욕망은 크나큰 화를 부른다.
탐하지 말았어야 했다. 욕심내지 말았어야 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댄 업보를 어부는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다시는 육지로 돌아올 수 없는 벌로써.
[어떤 부부]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아이가 생긴 것이, 아이를 바랬던 것이 화를 부르고 만 것일까? 행복하기만 했던 두 사람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아기 때문이다. 아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의 이면엔 무언가 다른 게 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바닷가]
그날의 바닷가.
아무도 없는 밤바다에서 내가 만났던 건 정말 유령이었을까? 내 안에서, 외로움에 외로움이 쌓여서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는 아니었을까.
[내리 사랑]
[한밤 중의 어트랙션]
지옥도, 사신도, 모두 네 안에 있다.
이 메시지가 이야기 속에 들어있다. 단순한 놀이공원의 어트랙션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잠들어있는 모든 건 '놀이'라 생각했지만 '놀이'가 아니었던 이들의 울부짖음이었고, 비로소 그 아픔을 알게 된 이들이 느끼게 될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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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블루홀] 과 [어떤 부부], 그리고 [내리 사랑] 이었다.
블루홀은 바다에 익숙한,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더불어 심해공포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
하지만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를 사랑하는 이의 존재
내가 저런 상황을 겪는다면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0.1%에 희망을 걸고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어떤 부부는 아기로 인해 찾아온 부부의 갈등과
산후우울증을 소재로 미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극 중의 부부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주변의 누군가는 혹은 나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이번 이야기의 끝은 비극이겠구나, 를 예상한 순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리 사랑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엄청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배우가 된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이 삶의 전부인 엄마의 이야기
너무 깊이 빠져버린 사랑이었지만,
엄마의 입장도 딸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어서
섬뜩해서 소름이 돋는 이야기라기 보단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이야기였다.
신체조각미술관은 단순한 호러 소설집이 아니다.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 슬픔이 담겨져있다.
어긋난 모정에 대한 슬픔
잘못된 선택에 대한 슬픔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
기괴하고 섬뜩한 공포로만 채워진 소설집이 아니여서
읽고 나서도 두번, 세번 생각나게 하는 그런 이야기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