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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마루야마 겐지의 신간 소설을 소개하는 신문기사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됐다.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마루야마의 문학세계가 이들과 얼마나 다른가―물론 확실히 다르다―를 역설하면서 기자는 뒤의 두 작가와 감각적·도시적이란 형용사를 연결시킨다.그러고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밀려온다!' 라는 외침이 어울릴 정도로 그의 소설 읽기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유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쉽고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매체가 뭐가 됐든) 우선 다수를 끌어안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다수를 만족시키는 그것은 대체로 다국적적 혹은 무국적적이란 평을 듣기 쉽다. '지나치게 감각적'이란 수식어는 양념처럼 따라붙는다. 이상은 이제까지 무라카미에게 쏟아졌던 엄숙한 분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확실히 그의 글이 감각적이긴 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를 제외한 모든 작가들이 철저하게 감각을 버리고 있거나.
한국에서는 하루키라고 친근하게 불리는―아마도 표기방식의 경제성을 우선시한 결과로 보이는데―그의 글을, 유행을 좇아 읽었건 유행포비아라 피했건 간에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같다. '하루키를 한번 꼼꼼히 읽어보자'는 것. 장시간 집중이 어려워 소설은 꺼려진다면 적어도 에세이 만큼은 읽기를 권하고 싶다.
목적은 하루키 문학세계 탐방이 아니라 그가 에세이에서 펼쳐보이는 소박한 세계관과의 조우다. 〈anan〉이란 잡지에 매주 연재한 글을 모은 단행본인 이 책은 그에게 갈까말까 망설였던 사람들에게는 부담없는 초행길이 될 것이다. 안이한 단정은 피하고, 옳고 그름을 강요하는 어조도 가능한 배제한다는 다짐하에 글을 썼다는 후기처럼 여기 모인 글들은 어떤 카테고리로도 묶을 수 없는 잡식성을 드러내 보인다.
일상재발견이란 글의 성격은 필립 들레름과도 통하는 부분이지만, 생활속의 '깜찍'한 보물찾기 지도제작과 같은 '들레름 노선'과는 사뭇 다른 것이기도 하다. 하루키를 읽으며 우리는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고 수긍하다가도, '뭐? 이런 생각을 한단 말야?' 하고 놀라고, '거참 별난 사람이로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된다.
마루야마는 필요한 존재다. 우리가 쉽고 가깝게 접하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작가이므로. 그렇다면 무라카미는 중요한 작가다. 현재의 우리와 세속적인 삶 속에서 놓치고 있는 가치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끄집어 내는 조언자이며 발견가―린드그렌의 삐삐와 같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