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흠흠...일단은 무섭긴 무서운 작품이다. 무서우라고 오싹해지라고 쓴 소설일테니 작가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마니아들의 공포소설 추천목록 랭킹 10위 안에 항상 드는 것 뿐 아니라 상위 랭커인 이 작품보다, 나는 동 작가의《푸른 불꽃》이 작품 자체로는 더 낫다고 본다. 이런 비교가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으리라. 두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그런 비교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검은…》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범죄자의 집요함과 이에 동반되는 공포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푸른…》은 범행의 궤적을 쫓음과 동시에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좀더 주력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작가가 같다는 것 이외의 공통점은 없는가?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두 소설 모두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내 비교는 범죄소설로 기능하는 두 작품을 두고 행해진 것이라 하겠다.

둘은 각각 어느 정도 약점을 보인다.《푸른…》의 경우 치밀한 머리싸움과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결말은 일품이지만, 정작 슈이치가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소네라는 인물이 내게는 그렇게 죽여야만 하는, 죽어줬으면(?) 하는 인물로 비춰지진 않았다.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슈이치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고 소네 같은 사람을 상상하면서 읽어주길 바랬다면 모를까(그건 넌센스다), 슈이치의 주도면밀해서 튀어나올 듯한 살인계획에 비하면 범행 대상은 지극히 평면적이다.

반대로《검은…》은 인물들이 제법 입체적이다. 주동인물 신지는 물론 고모다 부부, 메구미 등등 흡입력 있게 묘사돼 있다. 사치코에게 짜증이 날 정도였으니. 그러나 글의 전개는《푸른…》보다 떨어지는 감이 있다. 빈번하는 복선―범죄소설에서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라 할 지라도―, 신지의 깨달음, 위기에 직면한 사회에 대한 준절한 꾸짖음 등은 이 으스스한 소설을 조금은 유치하게 만들고 있다. '악몽은 계속된다. 이 사회가 지속되는 한.'과 같은 결말은, 뭐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쳐도 이야기를 짜는 재주가 더 빛났던 건《푸른…》이란 생각이다.

기시의 소설은 우라사와 나오키류의 백과사전 만화를 연상시킨다. 소설 내용은 제쳐두고라도 상식으로 삼으면 좋을 것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보험조항 같은 것은 한국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이 완전히 독창적인 뭔가를 고안해내는 능력이 일본에 비해 떨어진다―특히 법조항처럼 체계가 중요한 부문에서는―고 볼 때 일정 부분 비슷하리란 생각 또한 드니,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분야를 새로이 알게 돼 똑똑해진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 물론 이는 부수적인 효과다.

기시의 유명한 두 소설을 모두 읽고 나니 괜히 비교하게 돼 정작《검은…》자체에 대한 평가는 미약했다. 그러나 대상은 살인을 다룬 '공포'소설이다. 공포는 전이되는 거라지만 읽기 전엔 모르는 것이다. 서평은 못 썼지만《푸른…》에 별 네 개를 주고픈 마음에 세 개의 별을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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