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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ㅣ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경험자와 얼굴을 맞댄 대화 도중 알게 된, 조금의 가감도 없는 백 퍼센트 사실만을 기록하겠다. 내 지인은 수년간 프랑스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는 유학 초기에 유학선배―당연히 한국사람이다― 몇몇에게서 ‘논문은 이렇게 쓰는 거’라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던 ‘비법’을 강제로 전수받고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만의 길을 가겠노라 결심을 굳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에 대해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강의는 교수들의 소논문 강독이 주가 되며, 개중 뭐라도 알아듣고 필기를 해야 답안지에 쓸 게 있고, 필기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어 두는 게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 어학원 시절 시험 기간, 도서관에서 본 학생들이 거지반 필기한 낱장 위에 형광펜으로 금을 긋고 있어 이상하다 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다.
논문을 쓰는 단계에 이르면 당연히 한국처럼 지도교수가 정해지는데, 선택한 주제를 위해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부터 일러준단다. 그때부터는 목록에 있는 책은 물론, 자신이 필요하다 여겨지는 책들을 주구장창 읽는 날들이 계속된다(논문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인용구를 수집해야 하므로). 그 ‘선배’들의 조언은 바로 이 단계를 어떻게 요령껏 넘기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언제 그 많은 책들을 다 읽고 논문을 완성하느냐는, 이를 테면 ‘신속 완성을 위한 경제성의 논리’를 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지인은 강직하기가 대쪽과 같아 수년째 박사 논문을 위해 책을 읽으며 한 쪽 한 쪽 논문 분량을 늘리는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지인을 보며 ‘진정한’ 공부를 하는 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솔깃하면서도 불경(?)한 책으로 국제적 히트를 기록한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는, 그러나 그런 ‘경제성’을 좇는 독법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책이다. 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라는 타이틀도 타이틀이지만, 프랑스 학계에서 이 정도 글―특정 텍스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고 있으므로 논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을 써 내려면 어지간한 독서량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대강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희대의 문제작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대상으로 하여, 추리소설 장르에서의 시점(/화자) 문제, 에르퀼 프와로라는 캐릭터로 풀어 보는 정신분석학에서의 망상 문제 등을 면밀히 분석, 다들 아는 결말(즉 사건의 범인)에 반기를 든 다른 독법을 제안하는데, 훌륭한 논문이 그렇듯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망상’을 다룬 장(章)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단언하긴 어려우나, 그가 제안한 증거를 취합해 볼 때 ‘합리적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어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청할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방향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바야르가 제시한 관점을 토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재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비평이라는 심각하고 지루해 뵈는 장르가 소설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이 신선한 충격은, 비평 분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대중의 사랑을 덜 받는― 한국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편집자는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추리소설에 대한 한 편의 추리소설이라 선전하고 있는데, 그런 문구를 뽑은 심정은 십분 이해되나 크리스티를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에게 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일 것은 너무도 뻔하다. 비문이라 하긴 뭐해도 덜 다듬어진 문장이 다소 거슬리고, 2009년의 감수성으로 수용하기엔 뜨악하기까지 한 본문 편집과 표지 디자인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 책과 더불어 바야르의 저작물이 한국에 번역돼야 한다고 판단한 출판사의 결단력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이 세상에는 시장 수요와는 상관없이 꼭 출판돼야 하는 책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