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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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작가의 13년만의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이 책은 사실 최신작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에 수록된 5개의 단편소설은 이미 세상의 빛을 본 소설들이었다.


5개의 단편소설 중 2개의 소설을 제외하면 주인공은 모두 공지영 작가, 바로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들이다. 읽다보면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전적인 에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되는 책이다. 이 이야기들이 상상일까? 실제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공지영 작가의 일생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평범하지는 않다. 그녀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치뤄야 하는 유명세까지 더해져 많이 힘든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팬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거나 판단할 수 없으며, 사실 자세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고 관심을 많이 두려고 하지 않았다. 작가의 인생에 대해 많이 알면 그 작품의 내면까지 알 수 있게 된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소설을 읽을 때 많이 방해가 될 것 같아 일부러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명이 등장하고 상황들 모두가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글이다.  그녀의 쓴 많은 에세이들에서 나온 것 처럼 말이다. 그녀의 신간소설을 기다렸던 팬으로서는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아쉬워서 별로 였나? 아니다.
작가 후기에서 말하는 것 처럼  '당신이 홀로, 이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의 가슴속으로 희디흰 매화가 푸르르, 푸르르 떨어져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픈 것을 당신이 아파하고 당신의 아픔이 미세한 바람결에 내게로 전해져, 아마도 펼쳐진 책장 앞에 모두가 홀로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따스할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는 부분 처럼 그녀의 아픔처럼 마음에 상처가 있고, 환경과 상황이 어둡고, 이겨낼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도 이렇게 아프고 힘들 때가 있었어. 그러니 너는 혼자가 아니야!' 말해주는 것 같다. 세상적으로 알려진 가정사 안에, 어떤게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하여 내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힘들었고 아팠던 삶을 살았던건 확실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그녀는 그런 삶을 극복해 나간 것이다.


'말 한마디에 깊이 찔리고 온몸이 우박이라도 맞은 것처럼 멍투성이입니다. 그 멍투성이 몸에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가시는 남을 찌르는 도구도 되지만 바람결에 제 자신을 찌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중략) 유일한 낙은 성당에 가는 것, 혹은 밤마다 쓰던 기나긴 일기, 혹은 하루에 세 권씩 읽어치우던 문고본 소설들... 아주 막연하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들은 외롭고, 외로워도 되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러지 않다면 속으로 몰래 울음이 배인 그런 글들을 써서 저를 잠 못 이루게 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p222~223 - 후기, 혹은 구름 저 너머'





'2층 서재에는 내가 2년 가까운 칩거 동안 꺼내 보던 책들이 주르르 꽂혀 있었다. 에픽테토스, 안젤름 그륀,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릴케. 나는 에피테토스의 책을 꺼내 들었다. 밑줄이 여러개 그어져 있다. 빨간 색연필로도 긋고 파란 색연필 자국도 있다. 느낌표도 있고 당구장 같은 표시도 있다. 눈물 자국인지 녹차 방울인지 모를 자국도 있었다. 그것들은 종이 위에 상흔으로 남아 있었다. p17  - 월춘장구 중에서



어린시절 부터 그녀는 혼자라고 느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예비소집일날 기습적 시험에서 전교1등을 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면서 친구들의 시샘을 받게 되었던 것이 그녀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평탄하지 않았던 여러번의 가정생활들이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어찌되었건 그녀가 삶의 어려움과 외로움과 느끼고 있을 때, 그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 것은 확실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도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이다. 이 책은 미스테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19세 소녀의 집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의 집에 할머니는 원래 6개월 전에 돌아가셨어야 하는 사람이며 의학적으로 거의 사망선고가 내려져야 할 사람이다. 목숨만 간당간당 붙어있고, 장기의 모든 기능이 제 기능을 상실한 그런 상태이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되서 돌아가신다고 하여 집으로 모신 할머니가 6개월째, 죽지 않고 죽어가고 있는 상황. 죽어가던 할머니가 집안의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이유없이 죽게 되면 멀쩡한 정신과 육체로 돌아오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죽어가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반복되서 일어나고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이정도에서 그친다.




이 세상에는 살아 있는 것들이 많다. 할머니보다 얄한 것들도 너무도 많다. 할머니는 그래서 오늘도 죽지 않는다. p81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봤을 때, 따뜻하고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 났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할머니는 그런 할머니가 절대로 아니다. 나약한 것들을 짓밟고 잡아먹으며 포식하는 포악한 본성을 갖고 있는 나이가 있고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강한 자를 할머니에게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도가니]에서 장애를 갖고 있는 나약한 어린이들을 공격하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를 쌓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무시하는 사람들, 중소기업은 짖밟고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기업의 횡포 등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공지영작가의 소설을 기다려왔다. 그 목마름을 채우기에는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정말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들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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