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듯 모를듯 좋은 문장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08
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유선혜의 시집은 제목에 끌려 읽어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다음 시집이 나온다면 그 또한 읽어볼 참이다. 몇몇 시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돈다. 그게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다가 그 문장은 또 이런 의미이기도 한데, 그러다가 의미가 무슨 소용인가, 읽고나서 딱 드는 생각이나 감정이 진짜인거지 하다가, 그래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텐데 기웃거리고, 시야말로 독자가 감상하면서 완벽해지는거지라고 합리화를 하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몇몇 시들을 반복해서보았다.

처음 등장하는 시가 '괄호가 사랑하는 구멍'이다. 이 시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는데 결국은 무슨 이야기인지를 모르는 이상한 시이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면 아 이런 말이었구나 싶다가도 그게 아닐수도 있겠는데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게 만드는 시이기도 하다. 삶에는 괄호 쳐버린 많은 일들이 있다. 괄호를 쳤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다만 전체 문장이나 글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괄호 속의 글들은 읽으면 전체를 파악하거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안 읽어도 전체를 보는데에 큰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일찍 자기. 아침에 일어나기. 적당히 먹기. 적당히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고 적당히 울기. 매일 머리를 감고 하루에 30분 이상은 햇볕을 쬐기.] 시에서 말하는 괄호 쳐버린 일들인데, 그야말로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살짝 생략해버리기도하는데, 시를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저 괄호 쳐버린 일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근간이 되는 것들이구나 하는 것이다. 시인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궤적을 글로 따라가며 그것의 거룩함이나 소중함을 노래하곤 하는데, 나는 그런 시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런 눈을 가진 시인들의 시선이 마냥 부럽다. 그리고 그런 시를 읽고나면 삶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내 안의 서글픔이 조금 가벼워지곤 한다.

[세계의 의미나 인생의 허무에 대한 과도한 망상 같은 것. 내가 사실은 두 발이 변색된 인형이라거나 밤하늘이 흰색 콘크리트 벽에 큰 빔 프로젝터로 쏜 그림자라거나 우리 외할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 있어서 내 소식을 몰래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 시인은 위의 것들 또한 괄호속에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위의 생각들은 어찌보면 쓸데없는 것들이고 돈버는데에 크게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다. 공상 좀 그만해라고 잔소리 듣기 딱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런 생각들은 머릿 속의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든다. 괄호는 그렇기 때문에 구멍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괄호의 삶을 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리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괄호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내 삶에 드리운 괄호에 대해서 생각하고, 괄호로 인해 생겨가는 구멍에 대해서도 궁리해보고, 배가 고파 뭐든 입에 넣고 보는 슬픔에 대해서도 곰곰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일찍 자기'와 '과도한 망상'은 거리가 멀지만 또 한 괄호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삶은 그 두개의 간극 속에서 이리 저리 횡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시는 괄호와 구멍에 대한 글이기도하지만 결국은 처음과 끝에 드러나는 슬픔에 대한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상호 연결된 삼각형 모양의 세 꼭지점일수도 있다. 소설과 시 속을 여행하며 여러 공상과 망상 속을 헤매는 것을 좋아한다. 제 시간에 일어나고 때가 되어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일하는 나가는 것을 겨우 겨우 이루어간다. 삶에 대해 자꾸 논하고 싶지만 살다보며 그냥 지나가곤 하는데 종종 독서모임에 나가면 그런 병이 생기곤한다. 그 병은 불치병이지만, 또 삶에 대해 논하다보면 슬퍼지기도하지만 (우리의 삶은 잘된 선택보다는 잘못된 선택이 더 많을 경우가 허다함으로)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병은 계속될 듯하다. 그래서 내 삶은 괄호와 구멍과 슬픔이라는 삼각형과 매우 닮아갈 수도 있겠다 싶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정석의 적당함과 아쉬움

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박민우는 적당히 성공한 건축가이다. 그는 달동네 달골에서 자랐으나 공부를 잘해 대학을 진학하며 그 동네를 벗어나게 된다. 대학을 다니며 입주 과외를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조금씩 삶의 환경이 바뀌게 된다. 만나고 상대하는 사람이 변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골과의 인연은 점점 흐릿해져 간다. 달골에서 아예 추억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달동네인 그곳은 먹고 사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었고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의 악다구니가 늘 존재하곤 하였다. 그 속에서 박민우는 처신의 중도를 잘 지키며 지식인으로 인식되고 그 동네 또 다른 학생인 차순아와 점점 가까워진다. 동네를 벗어나기 전에는 설핏 열병과도 같은 마음이었던 박민우는 대학을 진학하며 그런 뜨겁던 태도마저 서늘해져 버린다. 차순아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박민우는 이후 성공의 욕망이나 출세의 욕구가 더 앞섰기 때문에 달골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게 된다. 차순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만 박민우는 선을 긋게 되고 그들의 인연은 거기에서 일단락 된다. 이후 박민우는 어느 정도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자녀를 갖게 되지만 적당히 모양새만 갖춘 가족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가고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외국에서 살아가고 자신만 한국에 남아 건축하며 강의하며 세월을 견디게 된다. 그러면서 나이는 들어가고 인생의 해질 무렵 그는 삶의 외로움과 공허로움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길을 서성이게 된다.

차순아는 첫 아이를 잃게되고 두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김민우라고 지었다. 김민우는 살갑거나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 무감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이가 보이면 그는 거기에 개입하여 자신의 할 일을 고요히 해 나갔다.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는 작가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우희라는 인물이다. 정우희가 제대로 된 급여를 받지 못하자 본인이 중간에서 받게 도와주고 폭우로 인해 그의 반지하집이 물에 잠기자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깔끔하게 정리를 해 나간다. 그것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겠지만, 김민우는 다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우희는 연극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아 하고 있지만 생계를 위해 이런 저런 잡다한 일들을 하게 된다. 꿈을 쫓아 살아가고 있지만 삶은 만만치 않고, 돈을 모으는 일은 수월치 않다. 그런 그의 삶에 김민우와 차순아가 개입하게 되고 그 너머 박민우의 삶 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김민우는 철거 용역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일중에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두 사람의 민우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삶은 이름만 같을 뿐 많은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기도 하다. 박민우는 전형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 계급 상승을 이룬 인물로 보여진다. 달동네를 탈출하여 또 다른 사회계급으로 진입하고 거기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적당히 타협하거나 방관하면서 자신의 부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광주 518의 소식을 어렴풋 전해 듣고 적당히 개탄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그 이후 들어설 정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어떤 이들이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그들이 진행하는 건축사업의 이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잇속의 챙기는 모습이 살짝 수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잠깐이며 고개를 돌리면 지나가는 일이기도 하였다. 건축사업을 하다보면 철거를 해야하고 자신이 직접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자신의 책임이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박민우는 김민우의 죽음에 대해 미약하지만 한발을 걸쳐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때로 다른 사람의 죽음 위에서 이익을 얻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한다. 김민우는 그 경계선에서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이고, 박민우의 경우는 저 멀리서 그것의 배후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례로 쿠팡 배달 노동자중 하나는 과로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죽음은 명백한 타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책임에서 멀고 가까움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빨리 빨리 배송되기를 원하는 수 많은 소비자들이 그 배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빠른 것을 좋아하고 빛나는 것을 흠모하고 새것을 선호한다. 나는 한때 핸드폰을 2년에 한번씩 따박따박 바꾸었다. 약정이 끝나면 새로운 폰을 갖는게 좋았고 2년이 끝나갈 무렵이면 적당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에 쓰던 폰이 어디 고장나거나 그러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곤 했다. 설거지를 매일 매일 조금씩 하고 한달에 한두번 냉장고를 보는데 그럴 때마다 버릴것이 늘 존재한다. 먹지도 않을 것들을 사고 버리고 또 사고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래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하곤 하지만 인간의 이런 가벼움과 포악스러움은 종종 아연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산을 깍고 건물이 올라간다. 기존의 집들을 헐고 새로운 주거지를 짓는다. 그 사이에 건설업자들은 돈을 벌고, 돈 있는 사람들은 더 돈을 벌고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터전을 잃고 더 외진 곳으로 흩어져버린다. 자본이 하는 일은 이처럼 냉정하고 그악스러우며 사람을 질리게 하는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사람들은 무심히, 적당히 방관하며 살아간다. 아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듯이.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박민우와 같은 서성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건가? 라는 질문 앞에 서게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질문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고 어떤 이는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핀잔을 주기도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앞에 우두커니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 질문을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닌가 싶다.

황석영 작가의 글은 몇 번 읽었고 그때마다 적당한 기대감을 채웠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앞으로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을듯하다.

[100자평] 해질 무렵

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그의 글은 기본기가 탄탄한 짜장면 같은 맛이다. 어떤 특별한 맛이나 깊은맛이라기보다는 기본은 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적당한 재미가 있다. 또 읽고나면 적당한 여운 또한 있으니 나름 무난한다. 딱 그정도라고 할 수 있다.

[100자평]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ㅣ 문학동네 시인선 197
문보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어떤 시집은 반정도 알아듣겠고, 어떤 시집은 반의 반정도 알아듣겠고, 어떤 시집은 거의 다 못 알아듣겠다.
이 시집은 나에게 세번째 경우인데, 그런 경우는 대개 몇번 더 반복해서 읽는데 , 이번엔 그럴 의욕이 잘 안 생긴다.

[100자평] 장엄호텔

장엄호텔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데 딱히 특별할게 없다. 대부분 우울한 이야기와 아주 잠깐씩 햇살이 비치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읽다보면 힘이 빠진다. 그런데 묘하게 그게 반복되면 또 다른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