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단순하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읽었고, 에즈라 파운드가 나왔고, 이 책의 뒷면에 에즈라 파운드의 추천사가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제임스 조이스의 이름은 그 자체로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바로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를 읽을 자신이 없어 초기작이자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편이라는 더블린 사람들을 집었다.나는 초보 독자라 작품해제에 등장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의도는 반도 알아채지 못했다. 특히 현현 또는 에피퍼니라 부르는 기법은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중간에서 뚝 자른 듯한 마무리 같은 건 느꼈다.첫 단편인 자매의 경우에는 한번 읽고 뭔 소린가 싶어서 다시 읽었는데 작품 해제에 따르면 거의 유일하게 제임스 조이스의 의도대로 읽었던 단편이라 할 수 있다.이제 작품해제와 별개의 내 감상을 말하자면, 미묘하게 일제강점기의 냄새가 살짝 났다. 가끔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느끼기도 했다.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읽을 만하다.
제목은 가장 파란 눈이고 파란 눈을 가진 흑인 여자아이에 대한 얘기라고 해서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다. 아니다. 정작 파란 눈은 뒤에 가서야 나온다.다 읽은 지금은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차별의 온상을, 겹겹이 쌓인 차별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을까싶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에서 등장하는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그와 동시에 차별을 벗어나는 것, 진정한 평등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접했다. 사이보그가 되다 라는 제목과 김초엽 소설가의 이름만 보고 소설인 줄 알았다. 장애학이나 장애인 인권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에게김원영 작가는 내가 잘 모르는 소설가처럼 보였다.이 책은 장애와 과학기술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과학기술과 접한 장애인을 사이보그에 비유한다. 솔직히 말한다. 정답이 없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면 그 해결책이 내재하고 있는 또다른 문제가 불거지는 식이다.하지만 희망을 말한다. 어떤 문제가 나타나더라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