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정수민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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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북캐스터 하면서 읽은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 에서도 나온 이야기 같은데 그리스도 인이라면 일반적으로 주님 하느님 하는 그런 하느님 예수님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나만의 예수님상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똑같은 한 사람을 이야기하더라도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에 동일한 인물에 대해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프랑수와 모리아크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다른 작가들의 예수님보다 덜 신적이고, 더 사람같았다. 멀리 계신 막연한 존재가 아니라 주위에서 쉽게 만날 것 같은 그런 평범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사람의 아들이 인간적인 모습에서 점점 거룩하게 변모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는데 특히 예수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26장의 글들이 다른장들보다 더 예술적이었다. 181쪽~182쪽 주님의 거룩하신 변모 이야기에서도 나왔지만, 327쪽 예수님이 잠 못 이루는 밤 겟세마니 동산으로 열두 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셨다는 대목이 이르니 문득 황창현 신부님의 특강이 떠올랐다. 왜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셨을까. 다른 제자들도 모든걸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선택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골고루 사랑하셨다면 유다가 자신이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은돈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버리지 않았을텐데(339쪽).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 왜 그럴까... 무슨 차이일까... 싶었던 문제를 오늘 사목 방문오신 주교님께서 복음말씀 강론중에 답해주셨다. 베드로는 바닷가 어부의 특징대로 침착하지 못하고,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면모가 있는데 왜 예수님은 그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175쪽)말씀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었을 때 다른 제자들 아무도 답을 못하고 있었지만 베드로만 답을 하였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 때문에 인간적인 부족함에도 베드로가 첫 교황이 된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물음에 바로 답을 주시니 하느님 진짜 내 생각까지 다 들여다보시는 것 같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 (315쪽)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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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로의 초대 - 김창래 교수와 함께 사유하는 철학 축제
김창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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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그물을 만드는 사람이고 과학자는 그 그물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한가지의 그물로는 매번 똑같은 종류의 고기밖에 잡지 못한다. 그물코의 크기가 다른 그물을 사용하면 다른 사이즈의 고기들을 잡을 수 있다. 저자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물고기가 있으니 우리에게 다양한 그물을 사용해볼 것을 제시하며 철학에로의 초대장을 보낸다. 신은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철학할 수 없다. 인간은 신의 지혜를 얻고 싶기 때문에 철학을 한다. 짐승은 신이 지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철학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철학을 하는데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신이 될 수 없어서 끝없이 지혜에 가까워 질 수는 있어도 완전한 지혜를 얻지 못한다. 플라톤은 우리 인간이란 이상적인 존재인 이데아의 모상일 뿐이므로 아무리 내가 너보다 잘나고 똑똑하다고 해본들 사물의 그림자만을 보고 살아가는 똑같은 모상들일 뿐이라고 한다. 스스로가 모상일 뿐임을 아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상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보다 낫기 때문에 그들에게 너 자신을 알아라고 철학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했으나 자신이 부족한 인간임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독약을 마시게 된다.
인간의 이성은 어떻게?를 묻는 과학은 발전시켜 나가지만 그 어떻게의 근본을 파고드는 왜?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를 묻는 과학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는 철학의 기반위에서 발전을 해나가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수록 철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학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책의 여정은 우리집 뒷 산을 오르는 과정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어렵지 않은 길을 걷다가 커다랗고 화려한 나비, 산새들이 노는 숲으로 가게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신기한 자연의 풍경 속에서 마냥 즐겁다. 그렇게 길은 평탄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볍게 땀을 흘리며 즐겁게 쭈욱 이어진다. 마지막 정상까지 1.4키로 정도 남은 구간부터는 서서히 힘들어지다가 1.1키로 지점에서는 갑자기 길이 급경사를 이루며 진짜 등산다운 등산을 하게 된다. 다리도 아프고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걸었는데도 겨우 300미터 나아갔을뿐이다. 돌아가기엔 넘 멀리왔고 정상으로 가기에는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길도 험하다. 내가 여기를 왜 왔나, 그냥 집에서 쉬고 있을걸 후회막심이다. 책은 초대, 초월, 신까지는 내내 즐겁고 재미있다가 3장으로 들어가며 슬슬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한다. 자아쯤 들어가면 읽다가 멈추다가 속도가 느려지다가 인식으로 들어가면 읽는다기보다 글자만 보이며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이를 어쩌나... 여기서 책을 덮기엔 남은 부분이 100페이지 채 되지 않아서 포기하기 찝찝하다. 글자라도 구경하며 가는 일이 꽤나 힘들다. 어찌어찌 가다보니 끝에는 또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왜 이렇게 관념론이 어려운가 스토리에 내 푸념을 보신 인친님께서 원래 동양인의 사고에는 인식이나 관념이 아예 없었다고 하시며, 19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프랑스어 사전을 만들며 인식과 관념이란 단어 자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주셨다. 해결책으로 서양인의 방식으로 생각하는거라는데 그부분은 다음을 위한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저자께서 이 책을 쓰신 목적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나? 당장은 알 수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늘 어떤분이 왜 내가 젊을때는 하느님이 내 곁에서 도와주고 계셨다는 것을 모르고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그게 하느님의 뜻이었구나를 알게 되었을까, 나이가 들어 철이 들었나보다 라고 말씀하시는걸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같으면 나도 아마 그 말씀에 동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전과는 답이 약간 다르게 나왔다. 인간의 이성은 과학적인 사실은 알 수 있어도, 초월적인 신의 지혜를 알지 못하지 때문에 당시에는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갔다가 세월이 흘러 되돌아봤을 때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에로의 세계로 초대해주신 김창래님과 세창출판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초대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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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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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스타 광고로 을유문화사의 스틸라이프를 보게 되었다. 그림과 문학작품에 나타난 정물에 대한 내용이라서 흥미가 생겼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어떤 기대라기 보다는 작고 예쁜 이 책이 중심을 잘 잡아 내용이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집중력있게 이야기가 잘 쓰여졌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다. 무심하게 옮긴이의 글을 읽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물화의 종류와 기원의 의미가 시작되는데 기대이상으로 내용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정물화의 기원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두 갈래의 시발점을 갖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자손이 죽은 부모의 영혼이 먹을 수 있게 음식을 바쳤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제사를 지내줄 자손 마저 죽고 나면 무덤 벽에 음식 그림으로 영혼이 영원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한 것이 이집트적 정물화의 기원이다. 정물화의 또 다른 시발점으로는 아모스서 8장 1절~2절을 그 기원으로 본다. 정물은 하느님의 자애로움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물화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은유로 still life, dead nature, nature non morte 등으로 불리운다.

이후로 서양 예술에서의 정물화는 오랜시간 사과와 배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에덴의 금지된 사과가 악malus과 사과 malum사의의 언어유희로 시작되어 사과는 상, 유혹, 보상이며 또한 상반된 의미로 사랑과 증오, 조화와 불협화음을 동시에 의미한다. 반면 배는 신성과 인간의 조화를 의미하며 그 자체로 좋은 의미를 나타낸다. 고흐에게로 가서 배는 양파, 촛불, 라스파이의 책 또는 테오의 편지로 변주되면서 구원의 개념과 통하게 된다. 피카소의 그림에서도 사과와 배는 여러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자주 등장한다. 스틸 라이프 이 책에서는 그림이나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여러 정물의 묘사를 예를 들어 설명하며, 우리는 보여주는 것 너머의 정물의 진정한 의미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려면 미술사적, 도상학, 기호학, 문학적 은유등을 이용해야 될 것이다. 작고 예쁜 책이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두께가 얇아서 깊은 내용으로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골고루 언급하고 있어서 본인의 열정에 따라 얼마든지 깊이있게 읽어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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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실화 - 정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연옥
막스 퓌상 지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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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옥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좀 잘 알아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얼마전 40대 자매님이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본인은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사는게 기뻤던 적이 없어서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다들 깜짝 놀래며 순간 멈춤이 되었다. 60대 자매님께서 달래려고 하시는 말씀이 평소 연옥에 관심이 많은데 티비에서 연옥의 삶을 보여준 영화였다던가, 드라마였다던가가 있었다고 하신다. 거기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지금 이생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똑같이 연옥에서 살아가더라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는게 힘들다고 죽어봤자 이 모습 이대로 연옥가서 계속 사니까 그냥 여기서 즐겁게 잘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난 그 말을 듣고나서 마음속으로 물음표가 마악 가득해지며 연옥이요? 우리가 묵주기도 각 단 마지막에 바치는 구원을 비는 기도만 떠올려봐도 연옥이 그런 곳이 아닌 것 같아서 제대로 한 번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중이었다. 하느님 다 보고 계셨나보다. 그 일이 있은 후 7월 가톨릭 출판사 북 캐스터 리뷰 책 선택 문자가 왔는데 연옥 실화가 있었다. 7월 리뷰 도서로 난 연옥 실화! ^^ 


 그래서 읽어 봤습니다. 다른 종교들에서도 천국과 지옥은 있는데 천주교에서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죽어서 바로 지옥을 가고, 아주아주 바르고 착하게 살아온 몇 몇 성인이나 의인은 죽어서 바로, 또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연옥을 거쳐 천국을 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크고 작은 인간적인 죄를 짓고 살아가는데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지옥으로 바로 갈 정도의 죄는 아니고, 그렇다고 바로 천국으로 갈 만큼 흠 없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옥으로 가서 살아있는 동안의 죗값을 치른다고 합니다. 연옥에서는 지옥 불의 고통과 똑같은 고통으로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옥불은 영원한 벌인데 반해 연옥불은 각자 기간은 다르지만 곧 끝이 나는 벌입니다. 연옥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느리게 가는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아주 바르게 살아간 두 사제의 예를 들어 이야기 합니다. 한 사람이 죽거든 죽자마자 미사를 바로 올려서 죽은 사제가 빨리 연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게 해주자고 서로 약속을 합니다. 한 사제가 죽고 살아있는 사제는 친구를 천국으로 보내달라고 사망 이후 즉시 미사를 드렸는데 미사를 드리고 나니 죽은 친구가 나타나서 섭섭하다고 합니다. 왜 약속을 어기고 나 죽고 1년이나 지난 후에 미사를 해줬냐구요. 그 시간이 현세에서의 시간과 똑같지만 연옥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1년처럼 느껴져서 그런거라고 합니다.죽은 영혼들에게 연옥의 고통을 줄여서 빨리 천국으로 보내주는 최상의 방법은 미사를 드리는 것이고 그에 버금가는 것이 영성체를 하는 것이며, 성체조배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것 또한 연옥 영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책에는 연옥 영혼으로 인해 겪은 경험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어릴때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원한 맺힌 귀신이 연옥에서 고통받는 연옥영혼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거의 흡사한 부분도 있구요, 옛날 이야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남의 흠 보고 미워하지 말고, 내 마음에 안들어도 싫어하지 말고, 누가 나한테 못됐게 해도 화내지 말자. ^^ 


미션: 

이 책은 가톨릭계의 전설의 고향이다. 


살아가는 동안 바르게 살아가야 되는 이유를 연옥 영혼들의 실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가톨릭계의 "전설의 고향"이다. 


살아가는 동안 바르게 살아가야 되는 이유를 연옥 영혼들의 실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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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인가 산업자본주의인가
마이클 허드슨 지음, 조행복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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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은 거대한 홍수로, 어느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어느 지역은 극한으로, 어느 지역은 폭염으로 지구촌 곳곳은 사상 유래 없는 기후변화로 고통을 받고 있다. 바다는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고, 이렇게 지구가 썩어서 멸망을 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모두가 다 같이 멸망해서 죽어버리면 크게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영화나 인터넷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구를 버리고 우주정거장을 개발해서 쾌적하게 살고, 돈이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쓰레기가득한 지구에서 겨우겨우 목숨만 붙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 미래에 대한 상상일 뿐이지만 결국 또 돈인가??? 고대에는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으로 문명이 바닷속으로 잠기며 부자, 가난한자의 구별 없이 전체가 다 멸망을 했다지만 지금은 문명이 망해도 부자는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된다. 부자들은 살아갈 방법이 다 있으니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필살적인 노력들을 안하고 지구가 이렇게 병들어도 방관하고 있는걸까? 문명의 멸망조차 경제력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계속 하던 중에 디플롯의 스토리에서 자본주의로 이야기 하는 문명의 운명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것을 보게되었다. 급 호기심이 생겼다. 마이클 허드슨이 유명한 경제학자라는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기대했다.
일단은 책에 쓰인 전문용어들보다는 일상적인 경제 상황이나 상식으로 편하게 내가 소화한대로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이 내용 전달에 더 좋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수혜자는 금융 부동산이다. 198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서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 매달 이자를 내게 되면서 중세시대와는 형태만 달라진 지대를 갚기 위해 돈을 벌어 갚아나가는 경제구조가 되었다. 집값과 땅값이 계속 더 오르게 되어 사람들은 대출을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빚도 능력이라는 인식을 심으며 대출로 집도 사라, 대출로 대학도 보내라, 대출로 사업도 해라, 빚을 독려하게 되었다. 대출을 하고 나서 이자가 더 올라가면 더 많은 이자를 감당해야 되고 점점 더 경제구조는 피라미드 최상위 1퍼센트 계층에서 금융의 90프로를 다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빚을 내어 갚아나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빚을 내고,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되고, 직장을 다른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당장 이번달 이자를 내지 못한채 몇 번 누적되면 파산하게 이르는 경제 구조로 불합리한 상황이라도 회사를 함부로 그만 둘 수 없게 되어 근로자들의 상황은 더욱더 힘들어지게 된다. 처음 신자유주의를 내보일때 경제학에서는 부의 낙수효과를 이야기하며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부는 중독성이 있어서 절대 질리지 않으며 가진자가 더 가지게 될 것이지 결코 나누어지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었다.
책에서는 지금 미국의 경제상황을 금융적 약탈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는 로마 제국 멸망 시기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세계는 미국과 미국을 맹종하는 서유럽 국가 대 미국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비 백인 국가들의 대립 구조로 본다.
책은 실패한 금융 자본주의의 해법으로 국가가 강력한 통제권을 쥐어야 한다며 중국 경제를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제시한다. 중국은 금융 부분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신용 창출의 주도권이 미국식 민간 은행이 아니라 국가 중앙은행에 있다. 국민 생활에 가장 필요한 주택, 금융, 은행을 공공재로 정해 공공의 통제하에 둔다. 중국은 소련처럼 정부 관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체계적 계획과 민간의 자발성이 결합된 중국 혼합경제를 지금의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의 금융 독식을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본다.
마이클 허드슨의 논문은 중국에서 큰 환영을 받고 중국내 여러 대학들에서 강연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 강연의 내용들을 엮은 글이다. 문명의 몰락 위기를 느끼며 경제 문제에서 이야기하는 새롭고 신박한 해결책이 뭘까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인데 결론은 중국 경제가 답이라서 네~... 하고 책을 덮는다. 중국이 저렇게 거대한 경제 국가가 된 것에는 성공 요인이 있고 배울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더 이상 다른 대안은 없을까? 또다시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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