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의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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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마음에 내린 하느님의 처방전 한동안 마음이 참 메말라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들에 파묻혀 숨 가쁘게 지내다 보니 감사라는 감정은 먼 나라 이야기 같았고, 일상은 무채색처럼 건조하기만 했었습니다. 특히나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데 주변에서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더 많은 짐을 제 어깨에 얹어주려 했습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끙끙대며 버티던 어느 날, 먼 곳의 성지에서 처음 뵙는 신부님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봉사는 내가 시간 남을 때, 여유가 될 때 하는 것이라며 내려놓으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신 해결책이 참 현실성이 없다 싶기도 했지만, 그 말씀에 기대어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생긴 여유 시간에 잠도 좀 푹 자보고 운동도 하면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억지로 깨우지 않고 가만히 두었더니, 신기하게도 아주 작은 일상들이 하나둘씩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머물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 남편과 아이들이랑 보내는 소소한 일상들이 새삼 즐겁고 소중해졌습니다. 저와 함께 웃어줄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멀리서 동네로 놀러 오는 동료를 제가 마중 나가야 할 판에, 굳이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저를 차에 태워 가는 배려를 받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심지어 키가 아주 크지 않아 코트가 발목까지 내려오니 따뜻해서 참 좋더라구요. 만약 내 키가 170이었다면 이 추운 날에 발목이 얼마나 시렸을까 생각하니 지금 제 모습이 좋아서 뜬금없이 신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별거 아닌 일들에도 서서히 기쁨이 차오르는 걸 경험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복론을 읽으니, 마음이 왜 이렇게 막 행복해지는 걸까요. 교황님께서는 행복이란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이라는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그 안에 이미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해지려고 무언가를 더 채우거나 억지로 애쓰기보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특히 나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여유를 가지라는 말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해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을 때도 그분은 이미 저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이 사랑을 먼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충분히 쉬고 그분께 받은 사랑을 확인할 때, 그 기쁨은 억지로 짜내는 의무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웃 사랑이 됨을 느낍니다. 하느님께 생명을 거저 받았듯이 나 또한 그 무상함을 살아갈 때, 즉 나를 아끼는 마음이 타인을 향한 진실한 나눔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낙엽보다 새로 돋아나는 싹을 지켜보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무거운 짐에 눌려 근근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정한 말씀들은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려두신 선한 꿈을 향해 이제는 기쁘게 걸어가 보려 합니다. 그 길 위에서 평범한 물이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하듯, 나의 매일매일이 기적 같은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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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제자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 하느님의 알파벳 2
잔프랑코 라바시 지음, 박요한 옮김 / 생활성서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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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생활성서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나와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알파벳이라는 시리즈로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낱말』과 『예수님 제자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 중에 저는 『예수님 제자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된 결과’로만 읽어 온 독자들에게, 그 이면에 놓인 원래의 언어와 사유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고 초대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두 단계로 나누어 가르쳐 온 저자 잔 프랑코 라바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라는 두 성경 언어가 지닌 고유한 울림과 신학적 깊이가 번역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희미해지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상실을 지적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원문이 지닌 생생한 색채를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고자 하는 염원에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길은 학문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언어 교재라기보다, 성경의 핵심 어휘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가 형성되는 방식을 체험하도록 이끄는 신앙의 여정에 가깝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수십만 개의 단어 가운데 신앙의 구조를 떠받치는 소수의 히브리어 어휘들을 선별하여, 그 소리와 어원, 의미의 층위를 따라가며 설명합니다. 이 단어들은 예수님께서 회당과 성전에서 들으시고 익히셨으며, 당신의 말씀과 행동 안에서 반복해 사용하신 언어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예수님의 언어 감각과 사고 방식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됩니다.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50여개의 그리스어 어휘 중 저는 두 개의 단어를 예시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히브리어 셰마(שמע)와 그리스어 아쿠오(ἀκούω), 곧 ‘듣다’라는 동사에 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듣다’는 단순한 청각 행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하는 셰마 이스라엘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에 삶 전체를 내어 맡기는 순종의 고백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ἀκούω 아쿠오 또한 같은 의미를 지니며, 바오로 사도가 말한 ‘믿음의 순종’과 깊이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고 선언하신 것처럼, 성경의 ‘들음’은 언제나 실천과 헌신으로 이어지는 행위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언어적 배경을 통해, 신앙이 단순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는 태도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어지는 그리스어 여정은 복음서 저자들과 바오로 사도가 사용한 언어를 통해 신약 성경의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중에서도 기노스코(γινώσκω), 곧 ‘알다’라는 동사는 성경적 앎의 깊이를 잘 드러내는 예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요셉이 마리아를 “알지 않았다” 고 표현할 때, 이 ‘앎’은 단순한 지적 인식을 넘어 사랑과 친교, 인격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이란 참하느님을 알고,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도, 이는 추상적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친교를 뜻합니다. 요한 서간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고 단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성경의 핵심 어휘들을 통해, 신앙의 ‘앎’이 이해와 실천, 고백과 순종을 아우르는 총체적 행위임을 일관되게 보여 줍니다. 동시에 저자는 신앙을 순수한 지적 체계로 축소하려는 영지주의적 위험과, 반대로 윤리적 실천으로만 환원하려는 도덕주의적 경향 모두를 경계합니다. 성경의 언어는 이 두 극단을 넘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이 그 계시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완전한 이해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성경 언어에 대한 공부가 지적인 취미나 기술 습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50여 개의 단어를 통해 접근해봤지만 원어로 성경을 바라보는 일은 하느님의 계시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돌봄과 관심의 여정이라 기대하며, 신앙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줄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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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김수환 -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
김수환 구술,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 엮음, 조한건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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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2025년 북클럽 3기의 마지막 서평책은 『추기경, 김수환』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복 추진이 본격화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때마침 가톨릭 출판사에서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님의 회고록을 출간했습니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님의 회고록을 통해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사제로 기억되는 이유를 이번 더욱 또렷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다가, 뭉클해졌다가, 재미있었습니다. 강추!
추기경님은 한국 현대사를 겪은 세대셨는데요, 일제강점기의 어린 시절,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유신 체제, 서울의 봄을 지나 지금의 민주사회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흔들릴 때마다 추기경님은 늘 가장 아픈 곳을 향해 마음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상처 난 이들을 살피고 위로하려 했던 한 사제의 마음을 회고록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의 할아버지 김요안공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셨고, 당시 임신 중이던 할머니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추기경님의 아버님 김영섭 요셉이십니다. 가난한 옹기장수였던 아버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님은 홀로 여덟 남매를 키우며 “너희 둘은 사제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며 세살 위 형인 김동환 가를로 신부와 함께 어린 김수환을 소신학교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소신학교 생활은 어린 김수환에게 그리 즐겁지 않았습니다. 소신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처럼 옹기장수로 살다가 스물다섯 즈음에는 장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는 사제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자신은 사제가 될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던 분이 결국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제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회고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짝사랑’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습니다. 첫 마산교구장으로 지내다 서울대교구장으로 떠나던 날, 추기경님은 서운함에 눈물이 났는데 여러 해 함께했던 마산교구 사제들은 한 사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추기경님은 자신의 사랑을 담담히 ‘짝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이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며,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책임 있게 사랑하는 것이 사제의 길이라는 깨달음이 그 고백 안에 담겨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 ‘짝사랑’은 더 넓은 자리에서도 이어집니다. 언젠가 남북이 함께 미사를 드릴 날을 바라보며, 통일 후 평양교구를 위해 기금을 모았던 마음을 추기경님은 다시 ‘짝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 고백을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사랑이 떠오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싶은 저를 예수님은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멀찍이 서 있는 저를 탓하기보다, 조용히 곁을 지켜주십니다. 추기경님이 말한 짝사랑은 바로 이런 예수님의 사랑 같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응답이 없어도 마음을 거두지 않고, 그저 함께 있으려는 사랑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 제가 드리는 사랑은 늘 부족하고 서툽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마치 짝사랑하듯 저를 기다리십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도, 응답이 더디더라도 마음을 거두지 않으시는… 예수님 그런 사랑이시죠? ^^
추기경님의 고백을 읽다 보면, 그분의 품위는 완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낮추고 부족함을 인정했던 태도에서 나왔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었으나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에 나는 아직도 부족합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모습이야말로 추기경님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이 회고록은 하느님 앞에서 꾸밈없이 살아가려 했던 한 인간의 진실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회고록을 통해 인간의 따뜻함과 하느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본명이 스테파노이신걸 저만 이제 알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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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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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 11·12월의 도서는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시편, 기도의 언어입니다.

시편은 인간의 기쁨과 감사뿐 아니라 깊은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마음을 열게 하는 기도입니다. 전례 안에서 시편을 접할 때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시편의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오늘 우리의 삶과 거리가 있고, 히브리어 특유의 간결함과 다층적 의미가 번역 과정에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시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응답의 성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경 전체가 하느님께서 하신 큰일을 전하고, 예언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면, 시편은 그 일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체험한 이들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신 백성을 지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함께하시며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을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시편 19,14)라 고백해 왔던 것입니다.

가톨릭출판사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이러한 응답의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편에서 반복되는 핵심 단어 40가지를 중심으로 시편을 새롭게 읽도록 이끄는 책입니다. 이 단어들은 구약 전체에서 중요한 개념들이지만, 시편 안에서는 특히 기도의 언어가 되어 인간 내면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시편은 고대의 노래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하며 드리는 살아 있는 기도로 다가옵니다.

책은 각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와 성경적 맥락을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샤마’(שָׁמַע, 듣다)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이고 응답하는 태도를 뜻하며, ‘샬롬’(שָׁלוֹם)은 평화를 넘어 온전함과 조화, 정의가 이루어진 충만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언어의 뉘앙스를 이해할 때 시편의 기도는 더욱 깊고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 역시 시편으로 기도하셨고, 죽음과 부활의 순간에도 시편의 언어로 아버지께 나아가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시편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 일용할 양식, 자비와 보호를 청하는 마음은 모두 시편 전체에 흐르는 주제입니다. 동시에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서로 용서하며 살아가라는 새로운 친밀함과 복음적 요구를 밝혀 줍니다.

결국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단순히 역사적 텍스트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시편의 언어를 오늘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책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깊이 성장하도록 부드럽게 이끌어 줍니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시편의 단어들을 통해 시편을 해석하는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구약 전체, 히브리어 성경 안에서 반복되는 40가지 단어를 다루는 내용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목보다 더 넓고 깊은 세계로 이끌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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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동물과 식물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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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 9,10월의 도서는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 속 동물과 식물입니다. 작년 캐스리더스 7기 때에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순례를 통해 성경 속에 나오는 지역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올해는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을 통해 성경 속에 나오는 동물과 식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탈출기 그룹성경 할때에 왜 궤약 궤를 만들 때 아카시아 나무로 하라고 되어있나요?”, “왜 주님께 제물로 바칠 때 나귀의 첫새끼는 양으로 대속해야 하나요?” 질문들을 하셨는데 성경 공부 할 때에 이 책을 곁에 두고 함께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각 주제별로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 작품이나 우리 정서속의 해당 주제에 대해 환기를 시키며, 또는 그 이스라엘이나 고대 지역 사람들의 정서속에서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성경에서는 등장하는 해당 주제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고 설명을 이어 가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 정서 속의 비둘기는 88올림픽 이후 급격히 늘어난 개체수로 인해 세균덩어리, 뚱뚱한 닭둘기 같은 안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저는 평소 비둘기가 왜 평화의 상징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책에서는 비둘기가 왜 평화의 상징인가에 대해 고대 사람들의 생각에서 기인한 부분과, 창세기에 나타난 내용을 근거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약에 와서는 비둘기가 하느님의 영을 상징한다는 내용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비둘기 외에도 이 책에는 개구리, , 나귀, 공작, , 참나무, 우슬초, 마늘 등등 78가지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혀졌습니다.

저는 뱀에 관심이 가장 많았는데요, 성경 전체에서 뱀은 50여회나 등장을 하고 그 역할 또한 다양합니다. 제가 뱀띠라서 뱀이 간교하고 저주를 상징하는 동물로 그려져서 되게 찝찝했었거든요. 뱀이 그렇게 나쁜 의미를 가진 동물이라면 왜 우리 조상들은 12간지에 뱀을 넣어서 뱀띠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요? 예전에 충무로 들락거리던 때에 전시 오프닝 뒷풀이를 갔었는데 제가 앉았던 테이블에 네 명의 사진가가 공교롭게도 전부 뱀띠였습니다. 저보다 24살 위, 12살 위, , 그리고 저보다 12살 아래였기에 즉석에서 뱀띠클럽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나이가 많은 선생님께서는 사진책 번역도 많이 하시고 이름 들으면 아는 사진계에서 이름 있는 분이신데, 우리 뱀띠가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해 이야기하셔서 기분 좋게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초반에 등장하는 뱀이 워낙 강렬했기에 뱀에 대한 선입견이 안좋은데, 50여회나 등장하면서 뱀은 성경 속에서 죽음과 구원을 상징하기도 하고, 선과 악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한 예로, 성서 40주간 때에 수녀님께서는 구리뱀의 치유 부분에서 사람이 자신의 과거 잘못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묵상을 하면 마음이 아리면서 치유가 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수녀님 말씀을 듣는 제 마음이 순간 저릿~하니 심적인 여운이 이어지며 수녀님 말씀에 공감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신학원에서 의대 출신 수녀님께서는 구리뱀에 대해 설명하실 때에 고대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셨습니다. 지금도 구급차에 나뭇가지에 뱀이 있는 그림을 보여주시며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이어진 서양의 뱀에 대한 상징으로 구리뱀의 치유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성서 40주간때에 들었던 구리뱀의 치유에 관한 설명은 심적으로 공감이 되었고, 모세오경 수업때에 들은 구리뱀의 치유는 머리로 수긍이 되었습니다. 이번 허영엽 신부님 책에서는 구리뱀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요한복음과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을 근거로 설명하시는데 이 또한 신학적인 맥락으로 납득이 되었습니다. 구리뱀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통해 우리보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의 근거있는 의견들을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얻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상으로 가톨릭 출판사 캐스리더스 9,10월의 도서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 속 동물과 식물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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