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그들은 누구인가
가토 히로시 지음, 남규형 외 옮김 / 고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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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 테러 사태 이후 아랍과 이슬람 세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서점에서는 문명에 관한 여러 책들이 새로운 붐을 이루었고, 미국의 제국주의와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 또한 러시를 이루었다. 이른 바 제3세력이라 불리우는 이슬람의 민족주의 노선이 마치 새로운 세력의 출현인 마냥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계치에 따르면 지금 이슬람의 인구는 약14억에 가깝다 한다. 물론, 통계자료마다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종교적으로 최대세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이슬람세력이 반미주의를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아는 바 대한민국 또한 친미주의 나라로 분류되어지기 때문에 이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이지만 우리 또한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슬람에 대하여 우리가 오해하는 점들이 몇가지 있다.

첫째, 미국의 9,11사태와 관련하여 이른 바 '테러리스트'라 불리워지는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전체 이슬람세력에서 5%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테러를 당하고,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던 그 날. 미국의 방송들은 일제히 이슬람세력의 환호성과 어린아이로부터 어린에 이르기까지 총을 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모두 걸프전 당시 이라크인들의 모습이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슬람 세력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에 유감의 메시지를 보냈으며,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성명발표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방송은 일체 우리에게 알려진 바 없다.

둘째,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고,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여 여성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원래, 이슬람교에서는 일부일처제이였다. 하지만 이슬람세력 초기 당시 대부분의 남자들이 전쟁에서 사망하게 되자 많은 과부들과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신랑은 신부에게 결혼지참금과 함께 결혼한 후에도 부양생계비를 내야함을 명문화하였다. 우리나라가 1998년에 가족법이 개정되어 비로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몫을 가지게 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이슬람은 우리나라보다 여성의 지위면에서는 무려 1400년이나 앞서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세력 2억2천만명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이 '메가외티 수타르노 푸트리'라는 여성이고,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모두 여성 수상과 대통령을 배출했다.

셋째, 석유산업외에 다른 산업이 이슬람세력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큰 착각이다. 세계 최대 관광국이 어디인줄 아는가? 그것은 프랑스의 파리나 스위스가 아닌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성지순례를 평생에 한 번 의무화하고 있다. 이슬람 3대 성지가 어디인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산업으로 일년에 약 50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그럼 일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찾는 관광객수가 약 2500만명 정도 되니까 이들이 숙박과 관광에 드는 기본적인 비용으로 약 2000달러만 쓰고 간다하더라도 500억 달러이다. 일년에 석유로 벌어들이는 액수와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액수가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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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훈구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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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사사한 언쟁으로 가까이 지내는 형과 사이가 멀어진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건 언쟁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고,그냥 조금만 나의 잘못을 인정하면 되는 거였지만,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며칠을 말 없이 지내게 되었고, 내 마음속은 '이러면 안되는 데...'하면서도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둘 사이의 벽은 두꺼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부끄럽게도 그 형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이대로 지내서는 안된다는.... 그 형의 한마디...그리고 그렇게 두텁게 쌓이고 있었던 벽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몇날 며칠 분을 품었던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럽고 창피하였다. '미안하다'는 말한마디가 뭐 그리 어려웠던지....

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그리고 쉽게 이야기 한다. '그것도 못하는 주제에...' 상대방이 듣고 상처가 되는 말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너무 많다. 이것이 과연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의 모습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또 너무도 쉽게 그 사랑이라는 말을 잊어버린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대신 죄를 짊어진 것이였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정한 사랑의 본보기였다. 은석군이 심문과정에서 한 말이 아직도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한 번도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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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없다
이희근 지음 / 사람과사람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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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역사가 토인비는 말했다. 언제나 후손들은 선조들의 행적을 보고 때로는 답습하고, 때로는 모방하면서 역사속에 감추어진 제도의 목적을 둘추어 내고 또한 실행하여 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목적은 분명해진다. 과거의 행적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언저리를 기록한 사료들이 달리 해석되고 왜곡되어졌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무엇으로 이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점에서 이번 <한국사는 없다>는 꽤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반도에 인류가 들어오고 나라를 건국한지 반만년이 되어가고 있다. 여러 유적들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기원이 어디서 부터 말미암았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 등등 시대가 바뀌고, 사상이 바뀔때마다 한반도의 조상 또한 번갈아 가며 선조의 자리를 차지 하였다. 자주성을 강조하고, 자치민족임을 고취시킬때는 단군조선이 성행하였고,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사대주의가 강할 때는 기자조선이 성행하였다. 왜 이런일들이 벌여져야만 하는 것인가?

이는 모두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의 사관들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통치자들과 연관되어 있었고,하나의 문헌을 놓고 그것을 달리 해석하고 또는 시대에 맞게 사료를 조작해버림으로써 당시의 통치에 이용하려 하였다. <한국사는 없다>에서는 여러 한국 역사들의 왜곡되고 달리 해석된 부분을 찾아 바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몇 가지 주제들을 들추어 냈다. 중요한 것들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군조선은 허구이다.
둘째, 고려의 훈요십조는 영,호남 지역갈등의 뿌리가 아니다.
셋째, 동학사상은 근대개혁사상이 아니라 봉건적 패쇄개혁이였다. 등등...
또한 덧붙여 아직도 우리나라의 역사가 일본 식민지 당시의 논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 와 이승휴의<제왕운기>이다. 13세기 후반에 기록된 이 책들이 고조선이 멸망한지 천오백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으니 그 동안의 왜곡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당시 몽고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고려는 단군조선을 내세워 자주성을 고취시켜야만 하였다. 따라서 전승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모아 있지도 않는 단군을 만들어 냈고, 이를 우리 조상이라 일컬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그 시대의 역사가의 사관에 따라 변절되어 왔고, 앞으로 변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오직 당대의 기록자만 알뿐 어떤 것도 진실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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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린 발자취 - 바른 양육과 성장 13
J.M.캐롤 지음, 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김 / 말씀보존학회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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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때 부전공으로 듣는 사학과 수업중 <중세사회와 기독교 역사>라는 과목을 들었다. 중세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수업에 임했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알고 계시는 기독교는 크리스트교(카톨릭 +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일뿐 이미 나의 개념과는 상이하게 틀렸었다. 결국 학기가 끝날 때까지 카톨릭의 역사를 기독교의 역사인양 착각하며 수업을 들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야 뭐 저건 '기독교의 역사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다른 학생들은 중세의 카톨릭의 모든 불의한 역사를 마치 기독교의 교회가 자행한 일인양 착각 할 것 같아 답답한 마음 이를 때가 없었다.

이런 답답한 내 마음에 속시원한 기독교의 참된 역사가 남긴 책이 있으니 바로 이 책<피흘린 발자취>이다.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정식으로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사상을 자신의 통치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였다. 당시에는 모진 핍박을 견디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 그대로 실천하며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도 많았었지만, 다른 변질된 복음도 굉장히 성행하였었다. 그 중에 하나가 '침례로 인한 구원'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침례가 변질되어 구원의 한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처음으로 종교회의를 열고, 모든 종파의 감독(목사)들을 불러들였다. 여기서 그는 국가와 교회를 연합시켜 그동안 교회의 머리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해 버리고 그 자리에 황제인 자신이 대신한다. 이 때 발표된 법 중에 '침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 침례'가 의무화 되었다. 그 때부터 교회는 국가와 연합하여 세속으로 물들었고, 그 다음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아는 바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분열과 타락이다.

이 때 황제의 부름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신앙의 자리를 지킨 종파가 있었으니, 바로 침례교도들이다. 국가와 교회는 엄연히 분리되어야하며, 종교회의에서 합의된 '침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 침례'에 대하여 거부한 사람들이다. 당시엔 침례가 구원의 한 방법으로 여겼고, 빨리 받으면 받을수록 좋다는 의미에서 유아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러나. 이런한 법에 침례교도들은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유아침례를 받은 사람을 다시 침례를 준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를 재침례교도들이라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에서 이 재침례교도(침례교도)들의 핍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침례를 다시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5천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하니, 아마도 이들이 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침례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를 거느린 교파가 되었을 것이다. 이 침례교도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여전히 핍박을 받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쯔빙글리나 칼뱅에게서도 핍박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 글을 통해 내가 침례교인이라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신앙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 일점 일획도 변질시키지 않으려는 신앙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침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의 침례교도들의 뜨거운 순교가 없었다면 침례라는 말은 카톨릭의 세례로 바뀌었을 것이고,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권위가 없었을 것이다. 이 이유 때문이라도 따지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며 다녔을지도 모른다. 편집 후기까지 합쳐 98쪽에 이르는 짧은 책이고, 가격도 얼마되지 않지만, 넉넉잡아 3시간만 투자한다면 여러분은 침례교인이라는 자랑스러움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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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윤석전 지음 / 연세말씀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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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예배와 기도와 말씀묵상은 왜 해야 하는가?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여러분에게 던졌을 때 과연 얼마나 논리정연하고 간략하게 답할 수 있으십니까? 때로는 너무도 간단한 이러한 질문에 우리들의 신앙이 흔들림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또다른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전투 입니다. 전투이기 때문에 싸워 이겨야 할 대상도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육신의 정욕이고, 악한 영이고, 세상의 타락된 문화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열심속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적과 싸우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들은 그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십시오, 분명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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