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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린 발자취 - 바른 양육과 성장 13
J.M.캐롤 지음, 말씀보존학회 편집부 옮김 / 말씀보존학회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학기때 부전공으로 듣는 사학과 수업중 <중세사회와 기독교 역사>라는 과목을 들었다. 중세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수업에 임했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알고 계시는 기독교는 크리스트교(카톨릭 +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일뿐 이미 나의 개념과는 상이하게 틀렸었다. 결국 학기가 끝날 때까지 카톨릭의 역사를 기독교의 역사인양 착각하며 수업을 들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야 뭐 저건 '기독교의 역사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다른 학생들은 중세의 카톨릭의 모든 불의한 역사를 마치 기독교의 교회가 자행한 일인양 착각 할 것 같아 답답한 마음 이를 때가 없었다.
이런 답답한 내 마음에 속시원한 기독교의 참된 역사가 남긴 책이 있으니 바로 이 책<피흘린 발자취>이다.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정식으로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의 사상을 자신의 통치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였다. 당시에는 모진 핍박을 견디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 그대로 실천하며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도 많았었지만, 다른 변질된 복음도 굉장히 성행하였었다. 그 중에 하나가 '침례로 인한 구원'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침례가 변질되어 구원의 한 방법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처음으로 종교회의를 열고, 모든 종파의 감독(목사)들을 불러들였다. 여기서 그는 국가와 교회를 연합시켜 그동안 교회의 머리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해 버리고 그 자리에 황제인 자신이 대신한다. 이 때 발표된 법 중에 '침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 침례'가 의무화 되었다. 그 때부터 교회는 국가와 연합하여 세속으로 물들었고, 그 다음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아는 바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분열과 타락이다.
이 때 황제의 부름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신앙의 자리를 지킨 종파가 있었으니, 바로 침례교도들이다. 국가와 교회는 엄연히 분리되어야하며, 종교회의에서 합의된 '침례에 의한 구원'과 '유아 침례'에 대하여 거부한 사람들이다. 당시엔 침례가 구원의 한 방법으로 여겼고, 빨리 받으면 받을수록 좋다는 의미에서 유아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러나. 이런한 법에 침례교도들은 절대 수긍할 수 없었다. 유아침례를 받은 사람을 다시 침례를 준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를 재침례교도들이라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에서 이 재침례교도(침례교도)들의 핍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침례를 다시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5천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하니, 아마도 이들이 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침례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를 거느린 교파가 되었을 것이다. 이 침례교도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도 여전히 핍박을 받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쯔빙글리나 칼뱅에게서도 핍박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 글을 통해 내가 침례교인이라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신앙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 일점 일획도 변질시키지 않으려는 신앙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침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의 침례교도들의 뜨거운 순교가 없었다면 침례라는 말은 카톨릭의 세례로 바뀌었을 것이고,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권위가 없었을 것이다. 이 이유 때문이라도 따지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며 다녔을지도 모른다. 편집 후기까지 합쳐 98쪽에 이르는 짧은 책이고, 가격도 얼마되지 않지만, 넉넉잡아 3시간만 투자한다면 여러분은 침례교인이라는 자랑스러움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